[심훈]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 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9.03.04
[펌]김용택 시인과의 인터뷰.. 맛을 즐기는 이에게 섬진강은 ‘재첩국과 참게탕’으로, 풍류를 아는 이에게 섬진강은 ‘산수유와 벚꽃 길’로, 문화를 사랑하는 이에게 섬진강은 ‘시인 김용택’으로 등치되곤 한다. 시인은 이제 섬진강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그가 떠난 섬진강은 섬진강이 아니다’라는 시가 나올지도 모를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10.10
[이수익] 우울한 샹송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8.22
[권선희] 열무김치가 슬프다. 열무김치가 슬프다 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은 장날이었지 열무 두 단을 샀어 시들어 버린 오후 짚으로 묶인 허리가 짓무르고 있었지만 어디 내 속만 하겠어 벌레 갉은 구멍 숭숭했지만 묵직했어 고작 두 덩어리지만 무수한 몸이 한 데 묶여 있었거든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무겁고 길었어 신문지를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8.21
[오세영]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8.07
[안도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안도현- 일생 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살아온 꼭 그 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는 것을 그저 아..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5.11
[공광규]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5.09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가던 길 멈춰 서서 가던 길 멈춰 서서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5.08
[서정홍]그리움 다 남겨두고 그리움 다 남겨두고 - 서 정 홍 - 남편 일찍 여의고, 사십 년 남짓 혼자서 농사짓고 살던 생비량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둡도록 방에 불빛이 없어 들여다보니 앉은 채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마을 이장님과 할머니 수첩 속에 적힌 자식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 사는 큰아들은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5.08
[안도현]연탄 한 장 「연탄한장-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 글 마당/시인의 마을 2008.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