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안도현]연탄 한 장

나무소리 2008. 4. 3. 12:30
                「연탄한장-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어리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어 주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