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 557

[정한모 / 가을에]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주돈이 : 주자] 애련설(愛蓮說)

애련설 (愛蓮設)​ - 주돈이​ 물과 땅에서 나는 초목과 꽃 중에 (水陸草木之花)​ 사랑할 만한 것은 매우 많다 (可愛者甚蕃)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晉陶淵明獨愛菊)​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매우 사랑했다 (自李唐來世人甚愛牧丹) ​ 나 홀로 연을 사랑하노니 연꽃은 진흙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予獨愛蓮之出淤於泥而不染) 맑은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속은 비고 밖은 곧으며 (中通外直)​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아니하며 (不蔓不枝) 향기는 멀리서 더욱 맑고 (香遠益淸) 물 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亭亭靜植)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매만질 수는 없구나 (可遠觀而不可褻玩焉) ​ 나대로 말한다면 국화는 꽃 중에 은일자요 (予謂菊花之隱逸者也) ..

[도종환] 저녁 무렵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등켜 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나의 어머니 / 브레히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ᆢ * 비가 참 많이 온다. 장마가 시작되나보다. 나를 위해 흘린 어머니의 눈물과 땀보다 적은데 우린 많은 비 장마라고 하니ᆢ

[파삐용]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은 세 가지 적과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한다는 사람.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 눕힐 때를 엿보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낀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파삐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 날 / 이성복

그 날 그 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 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

잡담이 능력이다

딱하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사람도 딱하지만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이가 없어 못 먹는 사람은 더 딱하다. 짝이 없어 혼자 사는 사람도 딱하지만 짝을 두고도 정 없이 사는 사람은 더 딱하다. 때문.: 잘 자라지 않는 나무는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고 잘 날지 못하는 새는 날개가 약하기 때문이다. 행동이 거친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더하기 빼기.: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좋은 생각에 좋은 생각을 더하면 복이 된다는 건 몇 사람이나 알까?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가 된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사랑에서 희생을 빼면 이기가 된다는 건 몇 사람이나 알까? 더하기 빼기.: 세월이 더하기를 할수록 삶은 자꾸만 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