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고르는 여자
- 최금진 -
브래지어가 탑처럼 쌓인 리어카 앞에
아이를 업은 갓 서른의 여자가 서 있다
그녀는 어떤 봉긋한 생각을 하며 브래지어를 고를까
그녀도 어둠 속에서
돌아앉아 브래지어를 채우며 쓸쓸할까
일찍 가슴을 동여매고 평평하게 살아온 청상과부 우리 엄마도
남 모르는 두 개의 탑을 가슴에 쌓고 살았던 것인데
빈 조개껍데기 같은 엄마
가슴 속 패총에도 가끔 희망의 진주알은 몽글몽글 잡혔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만 원에 두 장을 외치는 남자 앞에서
수북이 브래지어 탑을 쌓는 여자
터진 실밥처럼 너풀거리던 우리 엄마 손, 그런 손 하나가
아파트 상가 앞 좌판에 서서
텅 빈 브래지어 사이즈만 자꾸 가늠하고 있는데
캄캄한 몸을 채운 끈을 풀고 샤워를 끝낸 밤엔 그녀도
썰물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을까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까닭도 없이 부끄러운 제 몸을 가리며 한숨 지을까
엄마의 속옷 서랍 속에서
낡아버린 브래지어 몇 개가 기억하는
두근거림과 따스함과 안타까움 같은 것들을 안은 채
그녀도 혼자 샤워를 할까
모두 잠들고 적막한 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거기를 하염없이 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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