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정호승] 밥 그 릇

나무소리 2006. 4. 13. 11:51

   밥 그 릇

 

                 -정 호 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번 핥다가 그말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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