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공평한가>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걸어가자 같은 소리가 또 들렸다. "사사 살려주세요." 자세히 다가가 살펴보니 뱀 한 마리가 큰 돌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지치고 기진맥진해서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농부는 뱀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연민심에 돌을 치워 주었다. 뱀이 얼른 기어 나오며 말했다.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농부가 "감사하긴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하고 말하는 순간 뱀이 재빨리 농부의 목을 휘감으며 말했다. 배가 고파서 당신을 먹어야겠소. 농부가 말했다. "잠깐! 내가 목숨을 구해줬는데 나를 잡아먹겠다고? 이건 공평하지 않아" 뱀이 말했다. "삶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몹시 배가 고파" 농부가 물었다.
"삶이 불공정하다면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가 없잖아" 뱀이 말했다. "당신도 오래 살았으니까 삶이 불공정하다는 것을 잘 알 텐데" 하지만 뱀은 잠시 고민 끝에 농부가 자신을 살려주었으므로 기회를 주기로 했다.
세 종류의 동물에게 "삶은 공평한가?" 라는 질문을 해서 한 마리라도 그렇다고 대답하면 농부를 놓아주기로 했다. 뱀에게 목이 감긴 채 농부는 들판을 가로질러 세 마리의 동물을 찾아 나섰다. 맨 먼저 만난 동물은 암소였다. 농부가 암소에게 물었다. "삶이 공평하다고 생각해?" 소가 말했다. "음메에.. 사람들이 나한테 언제나 맛있는 풀을 먹게 해주니까 아주 좋아. 하지만 나도 매일 우유를 주잖아. 만약 내가 늙어서 더 이상 우유가 안나와도 나를 먹여줄까? 아니잖아, 나를 잡아먹을 거잖아, 삶은 공평하지 않아" 농부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뱀은 "헤헤헤" 하고 혀를 날름거렸다.
두 번째 만난 동물은 닭이었다. 농부가 "삶이 공평해?" 하고 묻자 닭이 대답했다. "꼬꼬댁.. 그렇지는 않아. 사람들은 나에게 모이를 주고 들짐승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게 닭장을 만들어 주고 지켜주지. 하지만 나도 매일 달걀을 주잖아. 삶이 공평하냐고? 잔칫날이 되면 내가 맨 먼저 목을 내놔야 할걸걸걸" 농부는 얼굴이 다 하얘지고 뱀은 "헤헤헤!"하고 날름거리며 이제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고 일깨웠다.
뱀에게 목이 휘감긴 채로 농부는 들판 너머로 마지막 동물을 찾아나섰다. 마침 그곳을 얼슬렁거리는 당나귀를 만났다. 농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 당나귀가 말했다. "당신이 목숨을 구해줬는데 뱀이 당신을 잡아먹으려 한다고? 나는 그저 한낱 당나귀에 불과해서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넌 춤을 출 수 있다고 하셨어." "춤을 춘다고?" 하고 농부가 물었다. "추추춤?" 뱀도 물었다. " 맞아, 춤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당나귀는 엉거주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이 너무 웃겨 암소도 큰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닭도 한쪽 다리를 뻣뻣하게 휘저으며 춤을 추었다. 그 장난에 맞춰 농부도 춤을 추고, 뱀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춤을 추었다.
뱀이 춤을 추느라 몸이 풀린 사이에 농부는 재빨리 목을 빼고 달아났다. 그러면서 옆에서 뛰어 오는 당나귀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어!"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66p. 류시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어리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하나 해주었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거라.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있지를 않다는 것을', 하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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