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일을 하십니까?”
“닥치는 대로 하죠. 발로도하고 손으로도 하고 머리로도 하고......
하지만 해본 일만 해가지고서야 어디 성이 차겠소“
• “(전략)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마누라가 한마디로 될 것을 열 마디 잔소리로 늘어놓는다면
무슨 기분으로 산투르를 치겠소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빽빽거리는데 산투르를 어떻게 치겠소?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해요. 알아듣겠어요?“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 “손가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조르바.”
“아무것도 아니오.”
“기계만지다 잘렸어요?”
“뭘 안다고 기계 어쩌고 하시오? 내 손으로 잘랐소.”
“당신 손으로, 왜요?”
“당신은 모를 거외다, 두목.
안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당신의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중략)
“그래서요? 손가락이 어떻게 되었느냐니까?”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아프지 않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는 아니오.
나도 사람입니다. 물론 아팠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면서 신경을 돋우었어요. 그래서 잘라 버렸지요.“
(중략)
나는 바다를 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로 내려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을까.....
•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아니 할아버지 아몬드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란다.>
내가 대꾸했죠.<저는 제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살고 있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보면 아무짓도 못하지요.“
• “....두목 나는 하느님이 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크고, 힘이 세고, 나보다는 돌아도 좀 더 돌았겠지요만.....
(중략)
하느님은 심문을 시작하시지요.
발가벗은 혼령은 하느님 발밑에 몸을 던지고는 애걸복걸합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죄를 지었나이다.>
혼령은 자기 죄를 밑도 끝도 없이 조목조목외어 나갑니다.
하느님은 심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품을 하십니다. 그러고는 꾸짖으십니다.
<제발 그만둬! 그런 소리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그러고는 쓱싹쓱싹 물 묻은 스펀지로 문질러
죄를 몽땅 지워버리시고 혼령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전당으로 썩 꺼져라. 여봐라, 베드로. 이 갑것도 넣어줘라!>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시란게 뭡니까? 용서해 버리는거지요!“
• 많은 사람이 허무를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허무를 극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했지만 내겐 그럴 필요가 없어요.
나는 좋다고 기뻐하지도, 안됐다고 실망하지도 않아요.
•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 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중략)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없는 놈일 것입니다.
•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 “두목,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왜 죽는걸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 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그럼 잘 자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야, 조심하거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 「어느 날 밤, 눈으로 덮인 마케도니아 산에는 굉장한 강풍이 일었지요.
내가 자고있는 오두막을 뒤흔들며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진작 이걸 비끄러매고 필요한 곳은 보강해 두었지요.
나는 불가에 홀로 앉아 웃으면서 바람의 약을 올렸어요.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되네.>」
조르바의 이 몇 마디 안되는 말에서
나는 인간이 취해야 할 도리와 강력하면서도 맹목적인 필연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맞서 대적할 어조를 감득했다.
• 「산투르를 쳐요! 조르바!」 내가 제안했다.
「두목, 내가 일찍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산투르에겐 느긋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 달. 아니면 두 달... 글쎄, 그 정도 지나야 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가서 두 사람이 영영 이별한 사연을 노래로 할 수 있겠지요.」
•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럴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두목, 어렵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안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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