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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인간연습

나무소리 2010. 9. 2. 15:38

제  목 : 인 간 연 습

지은이 : 조 정 래

읽은날 : 2010.  8.  31


 우리민족 수난의 역사 속에서 변화에 적응할 틈도 없이

세계와 국가의 큰 흐름 속에 편승되어 떠밀려 가다보니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기보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지는 타의에 의한 삶을 살아온 세대.


 일제의 혹독한 억압과 징용을 피하거나 겪으면서 살았던 아리랑세대,

해방이 되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에 휩쓸린 태백산맥세대,

휴전 후 분단된 국가 속에 개인의 사상이나 이념, 주권보다는

체제 유지에 부속품처럼 움직이며 살아가는 한강세대를 겪은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 속에서 지식인이기에 이념에 갈등하고 힘들게 살아야했던 이들.


 책의 서두에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라고 씌어있다.

나름대로 생각한 건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에겐

진정한 삶을 위해 인간연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


 소설은 박동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남파간첩이었던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지만

사람다운 삶과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란 신념으로

끝내 전향하지 않지만 고문 속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향자가 된다.


 출옥 후 자식들에게 찾아가지만 연좌제로 고통당하는 큰아들에게 외면당하고,

삶에 탈진한 아내는 기독교에 의지해 종교를 가질 것을 강요당한 상태에서

사회주의 최고의 모델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이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 속에서

그 동안 버텨왔던 사상과 이념이 무너지면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면서도

전향에 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윤혁에게

나는 그래도 전향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부추겨 세워보지만 결국 죽게 된다.


 북에서 남파될 때 25살이었던 아내를 두고온 윤혁은

전향자이기에 보호관찰이라는 명분으로 늘 감시당하면서

거주이전의 자유나 행동의 자유까지 제한 당하면서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어지럼증에 시달리면서도

강민규가 가져다주는 번역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한다.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이념이 무너지고, 박동건의 죽음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나 의욕, 신념이 없이 살아가지만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경희와 기준이 남매와

자신을 인정해주고 선생으로 받드는 강민규가 외롭고 힘든 삶의 버팀목이 된다.


 윤혁은 호치민평전의 번역하면서

프랑스와 싸워 이기고, 미국과도 싸워 이긴 베트남이

사회혁명을 하고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경제는 파탄지경이고,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사회주의 국가들은 계속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에 결함이 있다면 그 결함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3개월에 걸친 번역을 마치고, 호치민이 사망한 후

당과 관리들은 인민들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해 있음을 확인했다.

호치민은 죽기 전 자신의 시체를 꼭 화장시켜 전국에 뿌리되

그 뿌린 것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과 함께

해방을 맞게 되면 그동안 수만은 고난을 치러낸 인민들을 위해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을 유언했지만

당 간부들은 그 어떤 약속도 외면해버리고 자신들의 지배력을 안정시키고

확장시켜 나가는데 호치민을 효과적인 정치선전물로 활용했던 것이다.


 우연히 신문에서 비전향장기수를 북송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윤혁은 자신이 돌아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에 아파할 때

박민규로부터 다음은 이유로 자서전을 써야한다고 권유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 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일생에 그 시대가 얼마나 담겨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우리의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떠안고 가장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중략)

수많은 장기수들이 당한 고난은 엄연한 분단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묻혀버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건 꼭 기록으로 남겨져야 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북에서 남파될 때 서해안으로 들어와 군산에서 이리로 버스를 타고 잠입해

간첩다운 활동한번 하지 못하고 믿었던 친구의 신고로 잡히게 된 과정.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독방생활을 통해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나마 한달에 한번 면회 오는 어머니와 형수에 더없이 감사를 느낀 것을 써내려간다.


 독방생활에서 오는 고독감과 폐쇄공포증으로 병사로 옮겨 치료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잘 알고 이용하는 ‘효도회장’을 만나고,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사회주의의 획일성과 부자유를 비판하며,

미국의 패권주의와 소련의 팽창주의를 강대국이 저지르는 악으로 비판하는

양심적인 모범적인 고등학교 윤리선생을 만나는 과정 등을 써 내려가

4개월 만에 수기를 완성한다.


 수기가 발간되고, 많은 위로와 격려의 글이나 편지가 수없이 올라오지만

그에 못잖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도 자서전은 재판을 찍게 되는데

어느 날 독자 중 대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선숙 원장이 찾아온다.


 최선숙 원장과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던 중

자신의 보육원에 와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여생을 마칠 것을 권유받고,

경희와 기준이를 데리고 대전 보육원으로 들어가

화장실 청소, 아이들 목욕, 마당 쓸기 등으로 행복한 삶을 누린다.


 작가는 이 책이 작가의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상대국의 논리에 같은 민족끼리 사상, 이념이라는 문제로 죽고 죽이면서도

결국은 통일조차 이루지 못하고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우리민족.

그 속에서 개인의 권리는 무시되고, 인간적인 삶을 누려보지 못한 우리 선진들.


 윤혁은 보육원에서의 삶이 인간으로써는 처음 살아본 것인지도 모른다.

보육원 이전의 삶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다는 짐승보다 못한 생존이었고,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분단 시대의 [아사셀 양]이라 할 수밖에......

 

 윤혁에게 보육원 삶은 참된 삶이면서도 인간연습 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