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지은이 : 정호승 ( 5번째 시집)
읽은날 : 2010. 12. 26 ~ 27
이 시집을 언제 구입했는지 모르겠다.
대충 2년쯤은 된 것 같다.
그때도 한번은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12월 25일 성탄절 읽던 책을 뒤로 물리고
그냥 답답한 맘이 이 시집을 다시 들었다.
위로가 될 리도 없고, 머리에 들어올 리 없지만......
책꽂이에 100여권이 넘는 시집 중
아니 정호승님의 시집 전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시집을 뽑아든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고,
예전 이 시집을 읽을 때 겨울을 소재로 하고
눈을 소재로 한 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기에
답답함과 함께 이 시집을 선택했다.
정호승님의 4집 [별들은 따뜻하다] 이후
7년 만에 이 시집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 시집은 정호승님의 자기 자신을 이야기했다.
이전의 시집에서 보면 대개 '우리'를, 우리들 사랑의 화해를 노래했다면
이 시집은 그 자신이 시적 대상이 된다.
과거의 시가 '관념적 체험의 픽션'의 산물로
추상적인 민중을 향한 노래였다면
그 자신을 대상으로 한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 사건을 진술한다는 것은 시인에게는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아픔을 시인에게 줄 수 있다.
시인의 내면에서 벌어진 노래와 노래하지 않음의 갈등을 담담히 적어간다.
그의 시 중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몇편의 시간있다.
74쪽의 [기적]이나 75쪽의 [거리에서]는
열번 스무번을 읽어도 뜻도 작가의 의도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틀에 걸쳐 전체적으로 두번을 읽었다.
아주 담담하게 공감을 하면서......
내 맘에 와 닿는 시를 제목만이라도 적어본다.
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중략)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느낌 - [봄길]은 설레임을 준다.
어쩌면 너무 화려하기에 쓸쓸할 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서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연 어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중략)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이하 생략)
- 이 시는 음성문화회관에서 지난 번 시인이 직접 낭송했었다.
어머니인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생태 속에서 나를 생각하고
내가 돌아갈 모천(하늘나라)을 생각하면서 쓴 시라고 했던 것 같다 -
산을 오르며
(전략)
내려가자 사람은 산을 내려갈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산을 내려갈 때를 아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강요당하지 말고
해방되기 위하여 속박당하지 말고
내려가자 북한산에도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 내려가는 것, 내려놓음,
~당하지 말고, 있는 자체로 그냥 편안하자는 것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산이 거기 있음에 산에오르고
집에 가야하니 산을 내려오는 있는 그대로가 삶인걸.....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 죽이고
새들도 지치면 돌아갈 줄 아는데
사람들은 누더기가 되어서도 돌아갈 줄 모른다
- 사람만큼 무지한 동물이 있을까?
끝나도 끝난 줄 모르고,
정말 상처받고, 지쳐 죽을만큼이되고
누더기가 돼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고, 사랑은 아닌지...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은 아닌지...
서귀포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사랑일 뿐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할 때만 사랑했을 뿐(부분)
- 그래 두려워하면서도 하는 것이 사랑이다
상처뒤엔 꼭 남는 아픔과 버림받은 느낌.....
첫눈 오는 날
나는 죽으면 첫눈 오는 날
겨울 하늘을 날다 지친 새들 앞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하객들로 새들을 모셔놓고
어머니가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을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여자와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후략)
- 시인은 '외로운 사람은 어디로 가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린다'(수선화에게)고 했다
첫눈을 유난히 강조하는 시인이고 보면
진정한 사랑에 몸서리 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해도
그 사랑이 안타까워 행여 사후에라도 헤어짐이 안타까워
영혼결혼식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지 않을까?
잎새에게
하느님도 쓸쓸하시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사랑을 바라다가 쓸쓸하ㅣ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소리없이 지나가는 들녘에 서서
사랑은 죽음조다 강한지 알 수 없어라.
그대는 광한루 돌담길을 홀로 걷다가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은 것을 잃지는 않았나니
미소로서 그대를 통과하던 밝은 햇살과
온몸을 간지럽히던 싸랑눈의 정다움을 기억하시라
뿌리채 뒤흔들던 간밤의 폭풍우와
칼을 들고 설치던 병정개미들의 오만함을 용서하시라
우듬지 위로 날마다 감옥을 만들고
감이이 너무 너르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나니
그대 가슴 위로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어
하느님도 쓸쓸한 저녁 무렵
삶은 때때로 키스처럼 반짝거린다. (전문)
-- 도종환 님의 [나뭇잎 같은 사람많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차가운 바람을 먼저 맞고, 비가 오면 온몸으로 비를 맞고,
꽃처럼 화려하다는 찬사도 없이, 열매처럼 뿌듯함도 없는 잎새
그렇다고 너무 쓸쓸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도 인간의 사랑을 바라다 쓸쓸하고,
너무 오만하기에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어 쓸쓸하니까..
그 가운데도 미소로 웃어주는 밝은 햇살
싸락눈의 정겨움을 기억하듯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키스처럼 반짝이고 달콤할 때도 있는 것인걸.....
새 벽 기 도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 끌고 스스로 밥이 되어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이 되게 하소서(전문)
--김현성인가? 누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시라기 보다는 노래를 먼저 접하면서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정말 두렵다. 누군가를 또 사랑할까봐.
무언가를 또 사랑하게 될까봐.
다만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이 되길 기도한다..
내 바램은 아닐까?
까 닭
(전략)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짤기 때문이다.
** 3연으로 된 시에서
1연은 한포기 풀잎으로 태어나 풀잎으로 사는 것은
나를 밟고 가는 네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고
2연은 눈송이로 태어나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나를 짓밟고 가는 네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서고
3연에서 쓸쓸한 노래 한소절로 태어나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하기에
내 인생이 너무 짧은 까닭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아프고
그 아픔과 상처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게 사랑이고
그렇게 사랑하기엔 너무 짧은게 삶이고 사랑이 아닌지....ㅠㅠㅠㅠㅠ
그 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중략)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여기서 그는 누구인까?
나는 저런 사람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함석헌]님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아마도 예수가 아닐까?
아니다 그는 아마도 내 어머니일 수 밖에......
그 외에
사랑할 원수가 없어서 슬프다는 시인...
이 시집을 통해 다시한번 정호승님의 사랑을 맛본다
어쩌면 혹독하리만큼 아픈 사랑의 맛.
이 겨울 사랑으로 이젠 그만 춥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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