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책마을 산책

[박범신] 촐라체

나무소리 2010. 5. 28. 11:36

읽은 날 : 2010.  4

 

 이 소설은 실제 인물을 소설로 그려낸 작품으로

세사람의 등장인물이 등반일지가 소설의 주 내용이다.

 

 소설의 주인공 서른 세살의 박상민과 스물한살의 하영교는 

다른 아버지에 엄마가 같은 동복형제로 자라면서

서로 의지하면서도 나름대로의 그늘을 가지고 자란 형제다.

 

물론 하영교는 박상민을 어릴 때부터 무척 따르면서 좋아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박상민이 나타나지 않게되면서부터 서로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다.

 

 박상민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히말라야 촐라체 등반을 준비하는 과정에

동생 하영교가 아버지의 빚을 독촉하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박상민에게 도피해오면서

함께 촐라체를 등반하게 된다

 

서로의 마음 속에 믿음과 배신의 갈등으로 죽음을 넘나들며,

촐라체 정상 밟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동생 하영교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먹을 것도 다 떨어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혼은 눈물겹다.

 

 형이라도 살아서 돌아가길 바라는 하영교와

죽더라도 함께여야 한다는 박상민의 강한 집념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히말라야 산맥에서 죽어간 영혼들의 이끌림을 받아

그 사람들의 짐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해 결국 둘은 목숨을 구한다.

 

****************************************************************************

 

- 서른세 살은 예수가 죽은 나이와 같다. 따져보면 인생의 본문이 이미 끝난 게 아닌가.

 

-"현우야"

"예, 아버지......."

내가 혼잣말로 부르고 내가 혼잣말로 대답하기도 했다.

"왜 하필 산속으로 가려는 게냐?"

"......그리워서요"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이므로

엔돌핀이 분출하는 듯 기쁠 줄 알았는데, 기쁘기는 커녕 오히려 허망하고 슬픈 느낌이다.

정상엔 허공 뿐이다.

 

-목숨을 걸고 촐라체에 왔는데, 촐라체가 없다.

평생 나를 찾아 떠돌았는데 죽을 때 내가 없다는 걸 확인한 느낌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사람 인연이라는 것, 그거 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여.

아버지는 덧붙여 말하고 눈을 감는다.

어차피 인연이란 엇갈려 지나가고 말 것인데, 보내지 않고 붙잡으려다가

더 깊은 상처를 만든다는 걸 아버지는 너무 뒤늦게 깨달았던 셈이다.

 

-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클라이머에겐 적어도 세가지 용기가 구비되어야 한다는

김선배의 말도 이제 떠오른다.

가정과 사회를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가 그 첫 번째이고,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만한 배짱이 그 두 번째이고,

산에서 돌아오고 나서 세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의지와 열망이 그 세 번째 용기다.

김선배는 타오르는 향일성의 긍정적인 의지를 가진 산인이다.

비록 가정과 사회생활과 제 목숨까지 걸고 산을 오르지만,

산을 오를 때조차, 돌아와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에게로의 복귀를 꿈꾸는 것이

진정한 알피니즘의 정신이라는 뜻이다.

 

-왜 하필 절로 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한참을 무릎 꿇고 앉아 침묵을 지키던 현우가 들릴 듯 말 듯

".......그리워서요"

 

- 사랑이 남아 있는 한 사람은 죽음으로 걸어가지 않는다.

 

-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갈망을 쫓아 보상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성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