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몸에선 야릇한 냄새가 난다.
웬지 쓰레기통 옆을 지날 때의 퀴퀴하면서도 뭔지 썩어가는 냄새
청국장이나 메주 뜨는 듯하고 지린내 비슷한 냄새,
농수산물 시장의 오래 묵은 배추나 굴비에서 나는 냄새,
어쨌든 표현을 할 수 없는 야릇하고 개운치 않은 냄새가......
또한, 내 어머니의 말투에선 어딘지 모를 촌스러움과 함께
질그릇과 같은 투박함과 무식함이 드러나고, 가래 섞인 듯한 혼탁함이 드러난다.
작은 키. 잔뜩 굽은 등. 질질 끄는 신발.
남들이 입으면 잘 어울리는 옷이 내 어머니가 입으시면
어딘지 모르게 균형이 맞질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이 모든 것으로 좀 모자란 듯 느껴지는 어머니.
솔직히 많이 모자란 듯한 내 어머니는 그 옛날 20년 전
피반령(충북 보은군과 청원군의 경계 산) 넘어 토담집에서 살던 때나
지금의 살고 있는 집 그 어디에서도 엄마의 것은 없다.
내가 버린 목이 늘어진 양말이 엄마 양말의 전부이고,
헤어져 실밥 풀어지고, 고무줄이 늘어나 무심코 버린 아내의 속옷이 엄마 속옷이며,
이웃에서 버린 짝맞지 않는 신발이 엄마의 신발.
이 모든 것이 엄마의 것 전부이다.
지난 밤 먹다가 밀쳐놓은 뻣뻣해 버리려던 빵부스러기를 말없이 손으로 만지면서
한점한점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내 엄마의 눈과 마주치면 난 화가 먼저 난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말은 하지 않으시지만 조용히 눈물 젖은 눈은
'그럼 어떻하느냐? 또 그러면 어떠냐'며 편안하신 모습이다.
어둡고, 지저분한 방
한쪽에는 어지럽게 쌓여 있는 수많은 책들.....
다른 한쪽에는 잡다한 천조각과 흉물스레 생긴 채 한 구석을 차지한 채,
삶을 구걸하는 아내의 재봉틀......
그 어둠 한구석에 늙은 고양이처럼 등이 굽은 내 어머니를 보면서
뼈만 남은 앙상한 어머니를 가만히 안아 본다.
내 눈에선 눈물이 솟는다.
갑작스런 내 행동이 멋적어 눈이 서재에 멎을 때
지난 번에 읽었던 감동적인 글이 생각나 '낮은 울타리'를 집었다.
새로운 감동이 내게 밀려온다.
오래 전 <우정의 무대>라는 군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 프로그램은 우리의 가슴속에 추억과 어머니의 사랑을,
우리의 눈에는 사랑과 감동의 진한 눈물을,
우리의 귀에는 구수한 장맛을 생각하게 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옛날 어머니의 음성을 들려 준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무대 뒤에서 아들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그러면 아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어머니와 뜨겁게 포옹했다.
어느 날인가는 강원도에선가 올라온 어머니가 무대 뒤에서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시는 군인 장병 여러분, 다 올라오세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인들은 앞다투어 나갔다.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군인들은 모두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외치며, 장난 끼 섞인 이유를 댔다.
장내는 계속 웃음바다였고, 한 군인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는 마찬가지로 물었다.
"뒤에 있는 분이 어머니가 확실합니까?"
그러자 그 군인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닙니다.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 군인은 힘없이 말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 에 출연하기 위해서 올라왔다고 하기엔......
"그런데 왜 올라왔습니까?"
"어머니는 제가 군에 오기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군인의 목소리는 풀이 죽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장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랬군요. 그런데 왜 올라왔습니까?"
"예.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어 올라왔습니다."
사회자도 무어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보고 계십니까?"
"예, 확실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군인은 약간 울먹였다.
"그럼 아버님은 살아 계십니까?"
"아닙니다. 두 분 다 돌아가시고 형님과 살고 있습니다."
그 군인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그럼 어머니께 한 마디 하십시오."
그 군인은 눈물을 쓰~윽 닦고는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어머니. 이 막내아들은 형님들이 잘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잠시 떨리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군 생활 잘 하고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눈감으십시오."
군인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어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충성!" 그 군인이 경례를 하자 장내가 술렁이더니
모든 군인들이 일어나 다같이 '충성!' 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 군인이 눈물을 닦고,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하고 소리쳤고, 많은 군인들도 '어머니'하며 불렀다.
그 소리가 메아리 되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이제서 생각해보니 내 어릴 적 어머니의 몸에서는 인삼냄새가 났었다.
또, 구절초 같이 짙지도 옅지도 않고,
배시시 웃음이 묻어나는 은은한 향기도 틀림없이 있었다.
곡조없이 흥얼거리는 어머니의 읊조림이 내 마음에 더없는 평안을 주었고,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큰 사랑을 담은 천상의 소리였으며,
행복한 꿈자리에 들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의 자장가였다.
평범한 몸빼에 싸구려 꽃무늬 월남치마를 입어도
그 누구의 눈에도 정말 아름다웠던 미모의 여인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다 자식에게 내어주고,
가을 추수를 끝낸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한쪽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어머니.
이제 더 이상 자식을 위해 기도할 무릎 밖에 남아있는 게 없는 내 어머니.
오늘은 집에 계신 어머니를 꼭 안아주어야겠다..
볼이라도 한번 쓰다듬으면서 어릴 때처럼 안겨 눈물을 글썽여 봐야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글 마당 > 삶을 노래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길 같은 삶... (0) | 2009.10.14 |
---|---|
난 누굴 닮아가고 있지? (0) | 2009.08.26 |
휴가 첫날(09. 8. 16) (0) | 2009.08.24 |
개꿈(09. 8. 14) (0) | 2009.08.14 |
아픔도 내가 보듬어야 할 삶이지...(09. 7. 24) (0) | 2009.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