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꿈....
오늘 저녁 퇴근하면 한주일의 여름휴가가 시작된다.
많은 직장인들이 무척이나 기다리는 휴가라고 하지만
별로 달갑지도 기다리지도 않은 휴가
휴가는 나에게 주어졌지만 나의 쉼과는 관계없이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한 주간 눈칫밥을 먹을 생각하니
차라리 출근을 했으면 하는 게 바램이다.
내 삶임에도 진정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은 없는 것일까?
언제나 다른 사람에 이끌려 살아야 하는 내 삶
이번 휴가만큼은 잔소릴 하든 말든 내 계획대로 하고 싶은데......
월요일이면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야겠다.
배낭에 이것저것을 집어넣을 때 시집을 댓 권쯤 함께 꾸리고
하모니카 하나에 기타를 하나 싣고 떠나야겠다.
정처없이 길을 가다 작은 소도시 공원벤치 그늘에서
김이듬의 [지금은 자위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를 읽으며
조금은 야한 생각과 함께 맘속에 있는 사람을 그려보기도 하고,
젓국 비린내가 나는 바닷가에서 눈 시린 바다를 보며,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을 읽으면서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이성부의 시를 읽다 문득 근처 산이 있으면 산을 오르고,
고진하님의 시를 읽다 계곡이 있다면 계곡을 찾아가야지.
배가 고프면 공원 벤치에서 바구니하나 꺼내놓고
가슴이 따뜻한 이의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기다리며,
그 사람을 위해 정성스레 가슴 저린 기타를 한곡 한곡을 연주해야지.
천 원짜리 지폐 아니 백 원짜리 동전이 들어와도 난 기뻐하며,
밝고 환한 [라리아네의 축제]를 연주하며 스스로 행복해야지.
바닷가에 머문다면 파도소리와 하모니를 이루는 하모니카를 불리라.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는 아픈 전설의 [클레멘타인]을 불어보고,
"엄마는 모래 길을 달려온다"는 애절한 [섬집아이]도 불러보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쓸쓸한 그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하는 [로렐라이 언덕] 등
그저 파도소리도 아픈 전설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노래
함께 옛 낭만을 찾을 노래를 한번 불어봐야지......
단 하루라도 이렇게 내 삶을 살아봐야지.
"휴가가면서 무슨 시집을 가져가고 키타에 하모니카냐!"고
아내의 서슬퍼런 호된 질책이 날아오겠지만
그런 새된 소리는 귓등으로 막아버리고 대꾸하지 말아야지.
어쩌면 그저 지리산으로 발길을 향할지도 모르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지리산 변방을 돌다
뱀사골 어느 골짜기든 화엄사 골짜기든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으니
어딘지 몰라도 산이 있다면 올라가봐야지.
아니 사람을 압도하는 바위능선을 보고 싶어질수도 있겠다
그럼 설악산으로 발길을 돌려 공룡능선의 절경에서 하루를 묵고
남설악의 주걱 형제들의 가리판을 한번 휩쓸어보든지
공룡의 이빨 속을 드나드는 용아능선에 몸을 의지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난 꿈을 꾼다.
휴가 때면 늘 꿔왔던 그런 꿈을......
이번 휴가
이런 꿈만 꾸다가 아내의 손목에 모가지가 비틀려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다 지쳐 쓰러지는 휴가가 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않아도 행복할텐데......
2009. 8. 14.
'글 마당 > 삶을 노래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사랑합니다.(재편집) (0) | 2009.08.25 |
---|---|
휴가 첫날(09. 8. 16) (0) | 2009.08.24 |
아픔도 내가 보듬어야 할 삶이지...(09. 7. 24) (0) | 2009.07.24 |
연꽃방죽에서(09. 7. 14일 일기) (0) | 2009.07.15 |
남자의 이혼사유. (0) | 2009.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