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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나무소리 2009. 8. 13. 16:16

제  목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글쓴이 : 박민규(한겨레 출판사)

읽은날 : 2009. 2. 25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철학이고 뭐고 무식해서 잘 몰라 그런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단 참 착하다.

책을 시작하는 첫머리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게 그 이유다.


 이 책은 5공화국 시절인 1982년의 세계의 정세와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굵직한 사건들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그래, 맞아, 그런 일이 있었어.’ 라는 공감대를 갖고,

국기강하식과 애국가, 국민교육헌장과 엘리트 교복을 소재로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소설을 시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프로야구 6개 구단이 출범하면서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지고, 2연전을 했으니 하루를 푹 쉬고,

그 다음 날도 지고 초지일관 지고, 용의주도하게 지고,

주도면밀하게 지기만 한다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생겼다.


  

 인천지역을 연고로 출범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회원이 된 주인공은

열여섯 나이로 그 지역 중학교 입학생이 되면서 극성팬이 되지만

늘 패배만 하는 자신의 우상들이 한없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런 패배 속에서도 많은 팬들은 만년 꼴찌에 등을 돌리지만

주인공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으로 끝까지 남는다.

패배자는 누가 패배자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지만

스스로 패배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무의미하게 바라보는 눈길도 동정이나 비웃음의 눈길로 인식하듯

주인공은 자신과 무관한 패배에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들곤 한다.


  명문대에 입학해 방황을 하면서 지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자도 알고, 조르바라는 유형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대기업에 입사해 가족을 위해 본인의 희망이나 취미를 모두 뒤로한 채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탈락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초조해 하며,

열심히 일하지만 가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결국 이혼 당한다.


 1988년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IMF라는 태풍에 휩쓸려

5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실직자가 된 주인공은 이렇게 표현을 한다.

“나는 <가정을 버리고도, 회사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라고......

그러면서 마치 자신의 인생이 삼미슈퍼스타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늘 패배로, 누구도 기대받지 못하는 인생낙오자로....


 그때도 지금도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누구보다 잘 알겠다.

이혼과 실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같이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에 있던 조성훈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뜬다.


 조성훈은 실직 후의 주인공을 만난 당시를 이렇게 표현한다.

“처음 널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하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그렇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가주질 않는다.

꿈은 꾸는 자의 것이고, 삶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패배하고, 실패하고, 좌절했다고 생각하는 때 그건 자기가 인식하기 나름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우선 그날 이후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겨가면서 나는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 갔다.“


 그렇다. 삶은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삶은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면 가치 있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실직자가 되면서 그는 인생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미하일 엔데]의 소설 “모모”가 생각이 났다.

시간을 저축하라는 시간도둑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이 아닌 인생의 도둑이 아닐까?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고 주인공은 말한다.


 부지런하고, 크고, 넓고, 높고, 빠른 것이 善(선)이 된 반면

조금은 게으르고, 작고, 느린 것은 마치 버림받아야 하는 것처럼

惡(악)으로 치부되어 버린 지 오래다.


 우리 선조들을 봤을 때

아니 우리 선조 뿐 아니라 인류의 조상들을 봤을 때

그들은 지금처럼 빠른 속도를 원하고 부지런함을 원했으며,

뭔가 하지 않으면 늘 불안했었던 동물이었을까?

그건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을 한다.

“가진 게 간단하면 인생은 간단해진다.”

 이 진리를 터득하면서 아내와 재결합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인생이 막혔다고 생각을 하고,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게으름을 피우며, 이 책을 읽어간다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도 여유를 찾지 못한다면 산으로 가라.

길은 없어도 산은 틀림없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