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책마을 산책

[공지영]도가니

나무소리 2009. 8. 10. 12:46

제   목 : 도가니

작   가 : 공지영

읽은 날 : 2009. 8. 4.


  책을 잡고 하루 만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픈 얘기고,

감동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삭막한 현실에 어울리지 않고,

너무 아프다고만 하기엔 다른 따뜻한 세계도 있고,

어쨌든 책을 잡고 안타까움에 그냥 몇 시간 만에 끝까지 읽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우리주변의 약자에게 행해지는 살벌한 폭력에 내성이 생겨버린 탓인지

눈물을 흐르지도 않고, 심장만 쿵쾅거리며 뛰었다.


 소설을 읽으며, 이청준님의 [당신들의 천국]이 생각나고,

너무 오래 돼 기억이 희미하지만 조세희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성기님의 [공존의 그늘] 등 여러 소설과 뒤섞이는 복선이 깔린다.


 무진이라는 소도시에 청각장애인을 교육하는 자애학원.

사회복지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돈과 권력을 배경으로

저항할 지적 능력이나 힘도 없는 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유린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행동가들의 무모하리만큼 처절한 몸부림.


 결코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침묵해서는 안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인 것이다.


 마이너리그,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고 있는 강인호는

마음 넉넉한 아내가 줄을 대고, 기부금 명목으로 뒷돈을 낸 덕에

사립학교법인 자애학원에 임시교사로 채용되어 무진에 도착한다.


 설립자 배산 이준범의 쌍둥이 큰아들 이강석은 교장으로,

동생 이강복은 행정실장으로 자애학원이라는 왕국에 군림하며,

년간 40억원의 국고보조금으로 호의호식하고 미성년자인 청각장애인들에게

성적인 폭력과 육체적인 폭력이 무모하리만큼 가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을 하고 두 아이와 함께 살면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선배 서유진을 만나

학교에서 행해지는 야만적인 성폭행과 폭력으로

두 아이가 자살하게 된 과정을 학생들을 통해 알게되면서

양심에 따라 제자들의 인권회복에 앞장을 서게 된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이런 모든 일련의 불법과 비도덕적에 대해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에 호소하지만 금전에 매수된 경찰은 무감각하고,

사회복지를 담당하고 있는 관청은 책임을 회피하고,

이런 행태를 관리, 감독하는 교육청은 모든 걸 묵인하는 현실.

이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실상이고,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거기에 편승해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고,

맞대응할 힘이 없다고 외면해 버리는 우리는 공범자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해 자애학원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행위나 폭력.

거기서 행해지는 여러 불법행위 등이 법정에 서게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법은 가진 자의 편이고, 권력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심지어 사회의 마지막 북소리이며 목탁인 종교까지도......


 결국 교장과 행정실장은 집행유예,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은 6개월 형이 선고되어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약자의 편인 강인호 선생, 서유진 등은 자신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생활이 속속들이 파헤쳐지면서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새끼 사슴같은 슬픈 눈망울을 기억한다.

전민수. 

진유리. 

김연두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기억해야 될 텐데......


******************************************************************************


            책에서 발췌한 마음에 남는 글귀들을 적어본다.


-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


- 나쁜 놈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놈들이 수갑을 찬다.

맹수는 다리를 다친 사슴 한 마리를 잡을 때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법이다.


-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 진실은 말이야, 그걸 지키려고 누군가 몸을 던질 때 비로소 일어나 제 힘을 내는거야.

우리가 그걸 하찮게 여기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힘을 잃어.


-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인가?

(중략)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 용서란 나약한 자들의 것은 아니니까.

용서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하는 거니까.

용서란 죄악이나 부정이나 폭력이나 모욕에 눈감는 일은 결코 아니니까.

단죄를 해야 그것을 용서할 대상이 생겨나는 것이니까.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뮈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 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다.


- 자신의 흠집을 가리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부류의 인간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들이 남에게 가하는 폭력은 무차별적이고 잔인했다.

원칙, 도덕, 양심의 소리 같은 것은 이 무진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통에서 분리수거되어 변칙, 이득, 그렇고 그런 세상의 이치 등으로

재활용 되고 있는 것 같았다.


- 안개도 오래 겪다보면 앞이 보입니다.

이 세상은 늘 투명하고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안개는 장벽이겠지만,

원래 세상이 안개 꼈다고 생각하면 다른 날들이 횡재인 거죠.


-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 홀로는 쓸쓸하고 더불어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군중.

그래서 끝끝내 홀로이지도 더불어 함께이지도 못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