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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중앙일보] 책읽는 스타 박경림 - 체호프 단편선

나무소리 2009. 7. 21. 10:07

 그동안 중앙일보 문화면에 연재된 '책 읽는 스타'를 쭉 눈여겨 봤어요.

김혜수 언니는 워낙 책 많이 읽기로 소문난 사람이니까 '음, 역시 나왔구나' 했죠.

가끔 전화 통화할 때마다 "언니, 지금 뭐해요?" 물어보면

"책 읽고 있어"라는 대답을 들을 때가 많거든요.

  개그맨 황현희씨가 추천한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된 책이에요.

방송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니까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아닐까 싶어요.

'책 읽는 스타'에는 스타들의 인생에 크건 작건 영향을 미친 책이 나오니까

아무래도 기억에 남게 돼요.

무슨 책 읽을까 고민될 때 베스트셀러 순위만 볼 게 아니라 '

책 읽는 스타'를 참고해보시라 권하고 싶어요.

 일 하랴, 아이 키우랴 제가 언제 책을 읽을까 싶으시죠?

요즘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을 하고 있는데,

자정에 방송 끝내고 집에 와 씻으면 새벽 1시쯤 돼요.

천지만물이 고요한 그 때,

아무도 절 방해하지 않는 그 무렵이 저한테는 금쪽 같은 재충전 시간이랍니다.

 '체호프 단편선'(일송북)은 지난해 아들 민준이가 뱃 속에 있을 때 읽었어요.

'카네기 인간관계론'도 그렇지만 고전은 역시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더군요.

저 밑바닥에 깔린 인간의 본성을 사소한 사건과 가벼운 터치로 참 잘도 그려냈더군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관리의 죽음'을 볼까요.

극장에서 주인공이 재채기를 했는데 앞 좌석에 앉은 사람한테 침이 튀었어요.

그 사람은 괜찮다고 하는데 순전히 그이의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안절부절 못하죠.

상상의 나래를 혼자 펴면서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아요.

 이처럼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과 행동인데,

스스로의 컴플렉스 때문에 자기를 괴롭힌 경험, 저만 해본 건 아닐 거에요.

 '굴'이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한 아이가 식당에 붙은 '굴'이라는 글씨를 보고 굴을 상상하기 시작해요.

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괴물이 아닐까 여기죠.

그러다 누군가 굴을 사줬는데 징그러워서 눈도 못 뜨고 씹지도 못하고 그냥 꿀꺽 삼켜요.

우리는 실제로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살을 붙여 얘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게 얼마나 될까 반성이 됐어요.

 다 읽고 나니 배우 겸 감독 찰리 채플린이 떠올랐어요.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구나,

일희일비 할 필요 없는 거구나, 이런 깨달음과 함께요.

제가 민준이를 낳을 때 28시간 동안 유도분만을 했어요.

그때 병실에서 이 책을 다시 읽었어요. 여자들은 출산에 대한 공포심이 정말 크잖아요.

그런데 단편선을 읽다보니 '주위에서 너무 겁을 줘서 내가 상상을 거듭하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공포심이 커진 건 아닐까' 싶었어요.

'체호프가 다시 태어나서 지금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묘사한다면 또 어떤 희극으로 만들어줄까' 싶기도 했고요.

 

 참, 오래된 책이라 살짝 구식이 아닐까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체호프 선생님의 표현력은 정말 '예술'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