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삶을 노래하며

아버지~~! 2)

나무소리 2009. 1. 8. 12:02

 가을이 되며 자신이 떠나온 자리를 뒤돌아보지 않고 바람에 이끌려 가는 낙엽을 보며
내 의지가 아닌 세상의 의지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온 날이 없었는지.....
이게 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생각하는 사람 축에 들다 보니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건지.

이 맘 때쯤 아버님의 기일이 다가오면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

대단한 산골 오지 충북 보은군 회북면 산골오지에서 태어나
전후좌우 산자락이 내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자라온 나는
미술학원이나 유치원이 있을 리가 없고 다녔을 리가 없다.
그저 보고 배운 것이 가끔씩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읊조리던 시조가 전부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유난히 자연과 조화를 이룰 줄 아셨다.
작은 논밭 농사와 양봉으로 대가족의 생계를 이끌어 가시면서
6남매 중 막내인 나는 자식이라기보다는 한사람의 말벗으로 대하셨다.
그저 내세울 것 없이 초라한 빈농의 촌부로
어쩌면 이웃들과 잘 맞지 않는 차림이나 언행도 많았고.....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누구나 술을 마셨고 가정에서는 권위주의적이었는데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이나 우리에게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던 것은 물론이고
가끔 외출할 일이 있거나 오일 장날이 되면 다른 사람과는 다른
망건과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걷는 팔자걸음 등 그 모든 것이
당시 어린 내게 있어서는 남들에게 왜 그리 부끄럽던지.........

작은 생명하나도 참 소중히 여기셨던 것 또한 기억되는 것 중 하나다.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밭에 가서 이리저리 흙장난을 하면서 놀다가
지렁이를 보고 ‘지렁이에게 소변을 보면 어쩔까?‘ 하는 생각으로
지렁이에 대고 소변을 보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잡아당기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거 큰일 났네 얼른 병원에 가야하는데..... 가서 주사 맞아야 한다”
는 다급한 아버지의 말씀에 겁이 난 내가 “왜요??”하고 묻자
“지렁이에게 오줌을 누면 **가 퉁퉁 부어 오르고 지렁이처럼 생기게 된다”
“왜 그렇게 되는대요??”하고 물으니 한참을 말이 없으시더니
“지렁이한테 독이 있어서 오줌줄기를 타고 올라오니까 그렇지...”
어린 마음에 어찌나 겁이 났던지 그날 이후로 난 한번도
살아있는 곤충이나 지렁이에게 직접 소변을 본 일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해보니 아버지의 말씀은 거짓이지만
피부로 호흡을 하는 지렁이같은 동물에게 체온이 담긴 소변을 갑자기 붓는다면
호흡하는 지렁이의 표피를 상하게 해 생명에 위험을 주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고통을 주거나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경고를 이 나이에 깨닫는다..

자식들 교육에도 통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면서도
가끔 들려주는 참새가 콩콩 뛰는 이유, 개가 오줌을 눌 때 뒷다리를 드는 이유,
소를 몰 때 왜 ‘이랴’라고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들려주실 때면
난 얼마나 즐겁게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른다....

머리가 커지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이 최고로 생각하던 때
아버지의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말도 안되는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으며
논리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상식이하의 이야기 들 뿐이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지금에서야 만물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고 삶의 지혜이며
생활의 활력이 되는 해학임을 깨닫게 된다...

아주 가끔은 이해할 수 없이 어려운 말을 가르치시며
“그냥 외워둬라...낼 물어봐서 몰르면 얘기 안해줄 껴”하시던
아버지의 교육 방법과 삶의 참 모습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된다.

많은 지식인들과 대학들이 난립을 하지만 진정한 교육도 교육자도 없는 시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다고 국회로 청와대로 불나비처럼 뛰어드는 애국자들이 많지만
그들의 이합집산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시대
내 아버지는 나를 타협을 모르는 이방인이 되라고 가르치신 건 아닌지.....

난 이 시대의 이방인이 될지라도 내 아버지의 가르침을 존경한다...
내 아버지처럼만 내 자녀를 실천으로 해학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마음이 덜 아플텐데....

가끔 유혹이 내 맘에 스밀 때 조용한 음성으로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그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떠올리는 글 하나를 적어본다...

寧枉百里步(영왕백리보) 曲木不可息(곡목불가식)
寧忍三日饑(영인삼일기) 邪蒿不可食(사호불가식)

『백리 걸음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서 쉴 수는 없고,
사흘을 굶주릴지언정, 제멋대로 비뚤게 커온 쑥을 먹어서는 먹을 수 없다....』

 

200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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