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책마을 산책

[남지심]우담바라

나무소리 2008. 9. 2. 12:24

           우담바라     제1부  도다가의 종

 

선(善)만 존재하려는 극단적인 생각보다는

선 쪽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악을 없애 버리고 선만 두겠다고 생각하면 투쟁이 생겨.

악은 선을 있게 하는 연동 작용이니까.

악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발전하지 못하도록만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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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란 원래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순수하게 만나지만

그것이 힘을 가지게 되면 개인 위에 군림하고 개인을 지배하려고 들죠.

그때부터 개인은 이미 죽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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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아가는 일이 가난만이 외로움이고 고통인 건 아니다.

이디오피아나 방글라데시 난민들의 고통을

북구의 알콜중독자들의 고통과 비교한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이겠지만,

그러나 기아의 고통만 고통이고 고독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인간이 구조적으로 기아의 고통만 느끼게 되어 있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얼마나 단순하고 편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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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은 화합을 의미하지만 선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세.

선하고 아름다운 이면에는 악하고 추한 것도 있게 마련이지.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은 악하고 추한 것까지 받아들여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데 그 뜻이 있네.

만약 이 세상에 선하고 아름다운사람만 살아야 한다면

악하고 추한 사람은 어디 가야 하나?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만 살아야 한다면 짐승이나 새나 벌레는 어디를 가야 하나?

추하고 악한 사람을 배제시키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만 살 수 없듯이

짐승이나 새나 벌레를 배제시키고 인간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결국은 사람까지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은 좋은 의미에선 화합을 뜻하겠지만

넓은 의미에선 공존을 가르치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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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에서 연기를 하던 배우가 내려지는 막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모르긴 해도 그건 아마 절망일 것이다.

내려진 막은 배우에게 더 이상 어떤 연기도 허용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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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아름다움의 극치는 바로 조화이리라.

서로 다른 것이 한 덩어리로 엉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러면서도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때,

다름이 다름이 아니고 일체가 일체가 아닌 상태,

이것이 바로 조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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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에다 물이 다 채워져도 한 방울이 모자라면 차지 못하는 법일세.

한 방울의 물은 컵의 물을 채워 줌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채우는 것이라네.


제2부  먼 비구니길


몸은 버려야 할 물건이지만 또 공경해야 할 물건이기도 하다.

선방에 있다고 몸을 공경하지 않으면 끝내 버릴 수도 없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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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팔아서 뭐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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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화대만 들어오면 그걸 들고 나가서 팬티를 샀다.

하기 때문에 그녀 가방 속엔 예쁜 수를 놓은 색색가지 팬티가 가득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놓은 팬티를 갈아입는 아랫부분만은

공주 못지않게 호사를 한다고 해서 그녀 별명은 공주가 됐다.

이런 그녀 행동을 괴이하게 여긴 친구가 돈 벌어서 팬티만 사는 이유를 물으면

그녀 대답은 언제나 [불쌍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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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못난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 같다.

똑똑한 자식을 둔 부모는 그 자식을 잊고 살 수가 있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어도 혼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난 자식은 그럴 수가 없다.

늘 가슴속에 끌어안고 괴로워하고 아파해야 한다.

못난 자식은 아픔을 주지만 아픔을 주기 때문에 더욱 끌어안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부모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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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 끼고 서방질한다.

칠월 더부살이 주인 마누라 속곳 걱정한다.

생원 노릇을 할래도 먹어야 한다.

자 눈금도 모르고 조복 만든다.

재수 궂하고 싶어도 엉덩이춤 출 며느리 년 보기 싫어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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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듬의 관계. 너와 나 사이에 딱딱한 벽돌을 쌓지 말고 종이나 헝겊으로 막자.

그래서 최소한 종이나 헝겊 사이로 투과할 수 있는 교류만이라도 서로 나누자.

그 교류가 점점 깊어졌을 때 종이나 헝겊을 녹여 버리고

두 개의 그릇에 담긴 물이 넘쳐 하나가 되듯 서로 하나가 되어

합일의 경지까지 이르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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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서 완성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을 완성시키기 위해 정성을 쏟으면 내가 완성되어 가고

남을 파괴시키기 위해 고심하면 내가 먼저 파괴되어 갔다.

만남의 관계란 서로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나라는 개체는 결코 유일무이하게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3부 마니주를 찾아서


심우도의 첫 장면은 잃은 소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목동은 자신이 소를 잃은 것을 알고 잃은 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것은 바로 구도의 시작이다.

심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를 잃었다고 자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태만한 목동은 소가 도망 간 줄도 모르고 풀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하고,

피리를 꺾어 불기도 하고, 다른 목동과 어울려 장난을 치기도 하고,

싸움을 벌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럴 때의 목동은 놀이에 열중해서 소를 챙길 지혜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문득 놀이에서 깨어났을 때 목동은 자신의 소가 도망갔음을 안다.

그때의 당황함. 이것이 바로 구도자에게 있어서의 발심이다.

소가 도망친 것을 안 목동은 소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목동은 소가 살아 있음을 알고 소를 찾을 수 있다는 기쁨에 젖는다.

이것이 심우도의 두 번째 장면이다.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목동은 소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소를 찾는다. 그런 그는 얼마 후 마침내 자기의 잃은 소를 보게 된다.

그때의 희열, 목동은 소를 붙잡는다.

그러나 소는 목동을 따라오려 하지 않는다.

도망을 치려고도 하고 때로는 난폭하게 덤벼들려고도 한다.

목동은 찾은 소를 데려가기 위해 우선 소를 길들이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소를 길들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러자 소는 마침내 주인의 뜻을 따르게 된다.

소가 길들여졌음을 안 목동은 소의 등에 올라앉아 집으로 돌아온다.

소는 이제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려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그 순간 목동은 소와 자기가 둘이 아님을 안다.

목동은 눈을 들어 세상을 둘러본다.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새가 있고 물이 있고.....

모두가 제자리에 있되 그것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 속에 녹아 있다.

일체 만물이 한 덩어리 속에 녹아 있는데 소를 몰고 갈 집인들 어디 있겠는가?

목동은 거리로 나온다.

자신의 소가 도망친 줄도 모르고 놀이에 열중해 있는 목동들을 깨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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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 다리로도 강물을 건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건너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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