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삶을 노래하며

결혼기념 22주년 전야..

나무소리 2008. 5. 20. 11:07

 결혼 22주년.

1986년 5월 16일 결혼식을 했으니 참 오래 살았다.

 

 아내는 5월 15일 목요일이 스승의 날이라 쉬는 날이니

16일 하루 휴가를 내면 일요일까지 나흘을 쉴 수 있다고

오래 전 부터 이야기하는 폼이 어디 여행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본래 2020년까지 휴식년에 묶여 입산이 금지됐던

지리산 칠선계곡~천왕봉 구간이 금년 5-6월 중 주2회 임시 허용된다니

15~16일 등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 8일 오후에

15일 칠선계곡에서 천왕봉을 가는 것으로 예약을 하고

아내의 체력을 생각해 로타리대피소를 예약 후 15, 16일 휴가를 냈다.

 

짐을 꾸리며 여행준비와 산행 준비를 하는데 아내는 태평하다.

남들은 여자들이 여행준비를 한다는데 우린 나만 부산하다.

 

'수건 챙겼냐? 치약, 치솔은 어떻할까?

 옷은 뭘 입어야 하고 어떻게 챙기느냐?'며

 한편으로 들뜬건지 모르는건지 답답하게 여기며, 여행준비를 한다.

 

장거리 산행의 성패는 배낭의 무게에 달렸다는 걸 강조하면서

반찬은 고추장과 장아찌 만을 준비하며, 다른 건 사먹기로 하고

물은 500ml를 준비하라고 아내에게 설명하고 짐을 꾸렸다.

 

 14일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 퇴근 해 대충의 짐을 챙겨 출발한다.

 

 죽암휴게소에 들러 커피한잔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문득 아내가 주민등록증을 챙겨왔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전혀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이런 내 불찰이지.  미리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이미 잘못된 일을 어쩌겠는가 서로를 탓해야 상처만 남고

어쩔 수 없이 신탄진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다시 차를 돌려

청주로 돌아오면서 짜증이 나지만 아내의 마음 또한 얼마나 미안하랴...

 

어쩌랴 할수없지.

어떤 일이 일어난 후 서로를 원망해봐야 좋은 여행만 망치고,

피차에게 남는 상처를 치유할수 없으니 그냥 넉넉하게 웃으며,

'신경쓰지마 그럴수도 있지' 한마디로 마감한다.

 

집에 돌아와 주민등록증을 챙기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몹시 졸립고, 피곤하기도 하다.

10시 가까이 되어 칠선계곡입구 추성리에 도착해

인터넷으로 예약한 민박집 [초암 황토방]을 찾는데 쉽지 않다.

 

 방도 많을 텐데 뭐하러 미리 예약했냐는 원망과 함께

다른 집으로 가자는 아내의 말에 짜증이 나지만

민박집으로 서너차례 전화를 해 찾아 들어가니

깔끔한 황토방에 하룻밤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숙박비 3만원을 지불하고, 다음날 아침 산행 준비를 하는데

커다란 lock & lock 에 잔뜩 들어있는 마늘 짱아찌와

무우짱아찌, 기타 잡다한 반찬에 커다란 고추 여나무개와

고추장까지 반찬 무게만도 대단하다.

 

거기에 토마토 10여개와 오랜지 7-8개,

짐을 그렇게 줄이라고 했건만 먹기 위한 준비만 했다.

난 짐을 줄이려 쵸코파이, 찰떡파이도 4개씩만 넣었는데......ㅠㅠㅠㅠ

 

왈칵 짜증이나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적당히 살이 오른 하얀달이 한가로이 비추고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을 잠재우는 가벼운 별빛의 미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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