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북능선에서 중청봉까지......
서북능선과 마주치는 곳에서 조금 올라
자리에 주질러 앉아 사진 한 장으로 자취를 표시하면서
문득 이 발자욱을 처음 낸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한다.
이 험하고 높은 산을 왜 다녔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산은 허물을 벗었고
그 허물을 벗은 자리는 상처로 남아 길이 되었고
그 길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깨우쳐 주는데......
내 눈을 휘휘 젖어 이리저리 둘러보니
산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더러는 앉은뱅이 모양으로 자릴 잡으면서
서로의 어깨를 걸고 조화롭게 살아간다.
‘우리네 사람은 어찌 저렇게 조화롭지 못한지......’
시원한 바람 한 자락 나뭇가지를 흔드는데
그 바람의 손을 찾으려니 손은 보이질 않고,
어정쩡한 벌레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래~!! 너도 살려고 고생한다.
열심히 살아남으면 너도 아름다운 나방이 되겠지.
그 진리를 네가 모른다 할지라도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다보면
저절로 아름다워 지는 것을......‘
끝청에서 중청대피소로 오는 길에는 철 지난 철쭉이
이제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화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연분홍의 철쭉은 마지막 봄 산행이 메시지가 아닌지......
중청에서 바라보는 설악은 이 짧은 글로 어찌 설명하랴만
굳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느낌을 적어본다면
[마법의 성]으로 느껴질 만큼 위압감을 주는 좌측의 용아장성릉.
[휘두르는 말채찍]처럼 자연스럽게 굽은 앞쪽의 공룡능선.
[무직한 첼로음]의 느낌을 주는 우측으로 육산처럼 보이는 화채능선.
[꼬맹이 레고의 성곽]처럼 멀리 보이는 울산바위.
이 모든 것으로 하루의 피로는 눈으로 풀어 버린다.
배낭을 풀어놓고 대청봉을 오르며,
울산바위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금강산에서 우리나라 산들의 회의가 있었다나...
헌데 울산에 있던 바위가 너무 육중해 발이 느려
설악산에 왔을 때 회의가 끝이 나 그냥 멈춰 섰다나
그래서 울산바위가 됐다던가 그렇다는 거 같은데
나도 오래돼서 잘 기억이 없지만 그 비슷한 얘기가 있다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처음 듣는 회원님은 매우 기뻐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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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청봉에 서다.
대청봉을 딛고 서는 그 쾌감
시원한 바람의 맛을 느끼며 바라보는 표지석.
정상의 맛, 바람의 맛,
이것은 그 맛을 아는 이 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기쁨.
어쩌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승리감의 맛일지도 모른다.
작년 6월 20일에 여기 왔었는데......
그땐 입이 얼어 붙어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추웠는데
이번 설악산 산행의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탁 트인 시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축복을 얻은 것.
이 어찌 하늘의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대청봉의 표지석 옆에 써 있는
“樂山樂水”의 작은 표지석.
거기에 한쌍의 젊은 남녀가 앉아 글씨를 읽는데
뒤쪽의 [樂]이라는 글자를 흘림체로 쓰다보니
"락산문수“라고 읽는 실수를 한다.
여자친구는 글씨를 모두 알고 있는 듯한데
남자친구에 대한 배려로 자신의 지식을 감춘다.
“저거 [요]라고도 읽는다는데.....”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저런 것이 사랑이 아닐까??.....
여자의 입장에서도 남자친구의 마음을 다칠까 말하지 못하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한마디 거드는 게 좋겠다 싶다.
[저건 “요산요수”로 읽는 게 맞아요.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仁者는 樂山이요, 智者는 樂水라” 거기서 나온 거죠]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길.
“꼬리가 앞에 달린 짐승이 어떻고......”
“꼬리로 소변보는 동물은 참 특이하다”느니......
“양반 체면에 개헤엄은 안친다”느니......
“인간은 돼지와 원숭이의 결합에서 생긴 돌연변이”라고도 하고
이런 저런 되지도 않는 소릴 지껄이며,
하산 길의 지루함을 달래며 보금자리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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