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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나무

유대교 신비주의 부흥 운동을 뜻하는 하시디즘에는 슬픔의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죽으면 커다란 슬픔의 나무 밑으로 먼저 갑니다. 그 나무에 그 동안 겪었던 모든 고통과 불행을 걸어놓고 나무 주위를 돕니다.​ 자신이 걸어둔 것보다 덜 고통스럽거나 덜 불행에 보이면 자신의 것과 바꾸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다시 선택하고 맙니다. 고통스럽던 그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할지라도 결국 자신이 겪은 고통이 다른 사람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슬픔의 나무를 떠나게 됩니다. 남들의 고통보다 나의 고통이 가장 가벼움에도 나의 고통이 더 크고 무겁다고 생각하고 견디기 어려워..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카르네아데스는 기원전 2C경의 키레네의 회의주의 철학자인데, 그가 행한 사고 실험으로 인해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말은 인류의 도덕, 법률, 가치 기준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많은 사람을 태운 배가 난파해서 다 죽 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이 난파선의 조각에 겨우 몸을 실어서 구명을 하고 있었다. 그 판자 조각은 단 한 사람의 무게만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헤엄쳐 와서 손을 내밀었다. 그 때 판자에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그 사람의 손을 판자에서 떼어내 익사하게 만들었다. 판자를 의지한 사람은 살았고, 그는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