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삶, 천상병 시인과 국가보안법 <-- 읽기
귀천(歸天) - 천상병(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Back to Heaven - Chon Sang Pyong
- translated by Brother Anthon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nd of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 It was beautiful.....
KBS 낭독의 발견 천상시인 천상병을 낭독하다 <--보러가기 (목순옥 여사님 나오는 부분은 5분 40초 부터입니다)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한경수, 노래 : 홍순관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유종화, 노래 : 김원중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신병하, 노래 : 이동원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변훈, 노래 :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정덕기, 노래 : 바리톤 박흥우, 피아노 : 조영선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정덕기, 노래 : 서울 바로크 싱어즈
다시없을 순수 영혼 나의 남편 천상병 - 목순옥
나의 남편 천상병 시인은 한마디로 남편이라기 보다 늘 일곱 살짜리 같다는 별명을 붙일 만큼 아기 같은 심성을 가지 남편이다. 때로는 깔깔 웃다가 마음에 안 들면 "문디 가시나"(본인은 애칭이라 함)라고 말을 뱉곤 했다.
남편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빠를 따라 서울에 왔다가 명동 '갈채다방'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눈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살게 되면서 '갈채다방'에 더욱 자주 들르게 됐다. 그때 많은 문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서정주 선생님을 비롯해서 김동리·손소회·박기원·황금찬·박재삼·이근배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계셨다. 오빠는 '금문다방' '은성다방'등 여러 곳을 나를 데리고 다녔다. 오빠 친구들이 동생처럼 아껴주시고 귀여워해주셨기에 천상병 시인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오빠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연극도,대폿집도, 자연스럽게 다녔다. 그때 나의 눈에는, 많은 문인들의 모습이 순수 그 자체처럼 보였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본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삶을 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잘 견디어낸 나 자신에 감사하고 싶다.
천상병 시인이 나의 남편이 되기 전의 일이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옥고를 치른 후 부산 형님 댁에 내려갔다가 7개월 만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시립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의 입원 사실을 모른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며 걱정하던 친구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연락이 없자 죽었다고 생각하고, 유고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성춘복·민영·박재삼 선생들께서 흩어져 있던 그의 시들을 모았다. 민영 선생님이 원고를 정리하시고 성춘복 선생님이 돈을 마련하셔서 유고시집《새》가 나왔다. 김구용 선생님이 쓰신 <내 말이 들리는가>라는 서문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시집 발간 이후 천상병 시인은 시립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니까《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이 된 셈이고, 그것은 천상병 시인만이 가진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나는 정신병원을 찾아가 그를 면회했고, 병원에서 그를 보살펴주던 김종해 박사님의 권유로 그를 퇴원시켜 2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김동리 선생님의 주례로 종로5가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수락산 밑 초가집 문간방 하나를 얻어놓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수락산 입구까지 산책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소꿉놀이하듯 그렇게 시작한 신혼생활은 상상을 초월한 생활이었다. 그 사이 또 한 번의 정신병원 입원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결혼생활 20년, 참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살앗다. 남편을 두고 기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편은 결코 기인이 아니라 순수한 삶을 살다 간 아이 같은 심성의 시인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런 순수한 마음의 사람은 앞으로 다시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거듭 말하곤 한다. 그를 오십년 동안 거울 안 같이 들여다 본 나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 30년(13년인데 표기가 잘못된 듯 합니다. 김승규). 올해도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천상병예술제가 열린다. 앞으로 남은 내 생도 남편을 위해 쓰고 싶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월간 문학사상 2006년 4월호
천상병 생각 -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나 2000년에
귀천(歸天) 2 - 안희선
시인의 모습은 여전했다 한 잔 술에 불콰해진 얼굴이 고왔다
이제, 편안하십니까?
지상에서의 그의 삶은
시인에게 물었다
진실한 시를 쓰고 싶으면,
부끄러워서, 빨리 꿈을 깨고 싶었다
아, 이 사람아
여기 하늘나라는
카페 귀천에서 - 손희락
인사동 갤러리 타블로 건물 10평 남짓, 새롭게 문을 연 카페 귀천을 찾았을 때 차를 끓이는 왜 다시 왔냐고 물었더니 언제 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저승도 시인에게는 특별 휴가를 주나 보다
찻집 '귀천' … 누구나 하늘로 가는 길, 쉬어 가면 어떠리
이택희/중앙일보 기자
모과차 맛이 특별한 이 찻집을 시인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고 노래했다.
내 아내가 경영하는 카페 그 이름은 '귀천(歸天)'이라 하고 앉을 의자가 열다섯 석밖에 없는 세계에서도 제일 작은 카페 그런데도 하루에 손님이 평균 60여명이 온다는 너무나 작은 카페 서울 인사동과 관훈동 접촉점에 있는 문화의 찻집이기도 하고 예술의 카페인 '귀천(歸天)'에 복 있으라.
인사동의 찻집 '귀천'이다. 이 찻집은 이미 인사동이 아니라 서울의 명소다. 찻집 이름은 시인의 대표작 제목을 빌어다 쓴 것이다. 귀천(歸天),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찻집을 경영하는 사람은 시인의 아내다. 목순옥(睦順玉·67) 여사. 그리고 시를 쓴 사람은 천상병(1930.1.29~1993.4.28) 시인이다.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시인은 살아서는 睦여사의 선생님이고 남편이었으나 피보호자였고, 귀천해서는 睦여사의 신앙이 된 행복한 사람이다.
시에서 표현한 대로 문화의 찻집, 예술의 카페-귀천은 이름으로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실제로 인사동에 가서 찾자면 좀 헷갈린다. 한자로 <歸天>이라고 쓴 예서체 같은 글씨의 간판이 골목을 달리해 세 곳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한 시인을 위해 한 사람이 마련해 놓은 집이다.
첫째는 인사동 골목 한 복판, 해정병원 맞은편 골목에 있는 귀천이다. 주방을 포함해 7평 넓이에 테이블은 4개뿐이다. 벽을 따라 빙 돌아가며 의자를 놓고, 탁자들 사이에도 이동식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이 집에는 네 자리 내 자리가 없다. 엉덩이 댈 자리만 있으면 모르는 사람도 무릎을 맞대고 어울려 앉는다. 누구도 어색해 하지 않는다. 귀천을 찾아온 사람이면 그 정도의 정서적 공감은 기본이다. 그래서 좁은 집이지만 최고 22명까지 앉아 봤다고 한다. 1985년 3월에 문을 열어 그 자리에서 만 18년 넘도록 변함없이 '문화와 예술의 인사동'을 지키고 있다.
벽에는 그림이 가득 걸려 있다. 들여다보면 문외한이라도 알만한 화가들의 그림이다. 한쪽 벽에는 千시인의 시집들과 손때 묻은 문예지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시인의 사진도 몇 장 걸려 있다. 시인과 부인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앞의 자리는 시인의 자리다. 千시인은 생시에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의정부 장암동 집에서 나와 귀천의 이 자리에 앉아 차도 마시고 사람도 만났다. 무엇보다 생화(=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벌이) 때문에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아내의 그늘'을 즐겼다. 시인의 자리는 이제 주인을 잃고 사진만 남아 활짝 웃고 있다.
"아직도 선생님이 귀천에 계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뿐 아니라 선생님과 친분 있던 사람들도 가게에 오면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인사를 해요. '안녕하십니까. 저 왔습니다' 그러면서 생시에 늘 앉던 사진 아래 자리를 보며 선생님을 생각하시지요."
두번째 귀천은 올 2월21일에 문을 열었다. 귀천에 시의 한 구절인 '아름다운 이 세상'이란 부제를 달았다. 12평이니 아주 넓지는 못해도 원조 귀천보다는 훨씬 넓다. 원조 귀천이 너무 좁아 많은 손님들을 헛걸음시켜 미안하던 차에 계기가 생겨 2호점을 열었다. 주인이 건물을 팔려고 내놨기 때문이다. 새 주인이 혹시 가게를 비우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한 것이다.
새로 꾸며 그렇기도 하겠지만 분위기가 첫째 집보다 밝고 깔끔하다. 길가 쪽 벽에는 큰 유리창을 두고, 나무판에 시 '귀천'을 어느 서예가의 글씨로 새겨 걸었다. 그 아래 유리창틀 턱에는 꽃다발을 늘 한 아름씩 안고 있는 항아리 꽃병이 지키고 있다. 시 '귀천'을 받드는 신단(神壇)이라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다.
찻집 귀천의 대표차는 모과차다. 모과차는 睦여사가 직접 만든다. 매년 11월 말 15㎏ 한 상자에 25~27개 들이 1백50박스쯤 담근다. 모과가 서리를 맞아야 과일 맛이 깊게 완숙하기 때문에 된서리 내린 다음에 담근다.
睦여사가 모과차 만드는 과정은 통상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씻은 모과의 껍질을 모두 깎는다. 껍질이 들어가면 맛이 떫고 시다. 생모와 千시인과 함께 살아 온 의정부시 장암동 동네 아주머니들 손을 빌려 깎은 모과는 우표딱지 크기로 얇게 저민다. 모과차를 담글 때 대개는 저민 모과의 과육과 백설탕을 켜켜이 쟁여 담는데 睦여사는 다르다. 황설탕 시럽을 만들어 모과 저민 것과 섞어 숙성시킨다. 보통은 2~3개월, 길면 6개월쯤 익혀 고인 모과청으로 차를 끓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귀천에서는 1년이 안되면 모과차 축에 못 낀다. 귀천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19년째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청(淸)이란 궁중음식 용어로 꿀을 이르던 말이다. 과일을 설탕에 절여 과일 향과 맛을 우려낸 시럽을 표현할 우리말이 마땅찮아 그 말을 빌어 쓰자면 모과차를 만드는 원액 시럽을 모과청이라 할 수 있다. 睦여사가 1년을 숙성시켜 뽑아 낸 모과청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모과차가 된다. 끓는 물 외에는 어떤 것도 더 섞지 않는다. 더울 때 냉모과차를 만들기 위해 얼음을 넣을 뿐이다. 귀천 모과차의 깊은 맛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모과는 호흡기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이 집에 종종 간다. 갈 때마다 모과차를 마시는데 맛이 진해 마시다가 꼭 재탕을 부탁한다. 물만 갖다 부어주면 될 텐데 그러는 법이 없다. 모과청을 조금 더 넣고 물을 채워 준다. 이 인정과 배려가 또한 귀천의 매력이다.
모과차 말고도 귀천의 차는 睦여사사 손수 만드는 것들이다. 그래서 차 맛이 소박하지만 진하고 깊다. 유자차는 한해 1백 박스쯤 담근다. 대추차는 매일 집에서 한약처럼 다려 가지고 와서 차로 낸다. 찾는 손님이 별로 없지만 구색으로 차림판에 올린 커피(3천5백원)와 녹차만 기성품을 쓴다. 팔리기는 모과차가 으뜸이고, 유자차, 대추차가 그 뒤를 따른다. 차 값은 작년까지 3천5백원을 받다가 올해부터 4천원으로 올렸다.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 유사 업소들과 비슷하게 보조를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올렸단다.
귀천이 '문화 예술의 찻집'인 것은 그 집에서 앉아 있으면 마주치게 되는 문화 예술인들이 증명한다. 문인들만 해도 신경림, 신봉승, 강민, 민영, 황명걸, 윤후명, 이근배, 남정현, 성춘복 등 문단의 어른들을 무시로 볼 수 있다. 생시에 千시인과 형제의 연을 맺은 이외수도 가끔 들르며, 함께 형제의 연을 맺은 중광 스님은 벽에 걸린 그림에 담겨 이승의 인연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찾아간 4월 24일에는 시인 정진규 선생이 문하생들과 다담을 즐기고 있었다.
평생 천상병 시인의 보호자였던 睦여사는 남편 千시인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결혼 전 15년, 부부로 20년, 타계 후 10년, 함께 한 세월 45년을 한결같이 그래왔다. 거기엔 신앙에 가까운 믿음과 존경과 사랑이 녹아 있다. 睦여사는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시인의 10주기(4월 28일)를 보내며 반세기 시업(詩業)을 마무르는 일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4월21~30일, 5월 12~31일에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소장 미술품·유품전시회가 계속된다. 전시작품은 천상병문학회 기금 마련을 위해 판매도 한다. 지난 주말(27일)에는 장사익, 이동원 등이 출연한 시낭송회와 추모 공연이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5월 첫 주말(3~4일)에는 지리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귀천'시비(詩碑) 앞에서 제1회 천상병문학제가 열린다. 문학제를 주관하는 시사랑문인협회(02-720-2604)는 천상병문학상 첫 수상자로 문정희 시인을 선정했다. 6월에는 뉴욕 교포 문인들이 10주기 추모행사를 하며 극단 '즐거운 사람들'에서는 추모 뮤지컬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단구에 고희 가까운 할머니가 그 와중에도 찻집 두 곳을 경영하는 분주함이 안쓰러워
물어보았다.
시인은 자신의 시업(詩業)을 완성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을까, '여천사 같은' 장한 아내가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잠모습 아내
어이없게 어이없게 깊게 짙게 영! 영! 여천사 같구나야! 시간 어이없게 이른 새벽! 8월 19일 2시 15분이니 모름지기 이러리라 짐작되지만 목순옥 아내는 다만 혼자서 아주 형편없이 조그만 찻집 귀천을 경영하면서 다달이 이십만원 안팎의 순이익(純利益)올려서 충분히 우리 부부와 동거하고 있는 어머니(사실은 장모님)와 조카 스무살짜리 귀엽기 짝없는 목영진 애기 아가씨와 합계 네사람 생활, 보장해 주고 또 다달이 약 오만원 가량 다달이 저금하니
…(중략)…
소설가인 이외수(李外秀)씨와 이름 잊은 제수씨가 퇴원 때 집에 와서 한달 동안 자기들 집에서 머물러 달라고 부부끼리 간청했지만…… 다 무시하고 어머니와 영진이가 있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직귀(直歸)했습니다! 아내야 아내야 잠자는 아내야! 그렇잖니 그렇잖니.
<2003년 4월 취재>
* 전 화 : ①02-734-2828 ②02-3210-2288 * 주 소 : 귀천① 서울 종로구 관훈동 24번지, 귀천② 관훈동 83번지 * 위 치 : ①인사동길 한복판 해정병원 맞은편 세모화랑 옆 골목 철문 안에. ②인사동 관광안내센터 맞은편 인사동3길 학고재(공사 중) 골목 안 60m쯤. * 주 메 뉴 : 모과차, 대추차, 유자차, 생강차, 금귤차, 녹차 각 4천원. * 좌 석 : ①최대
20명 ②30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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