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정호승] 그 는

나무소리 2006. 7. 11. 10:27
               그      는

 

                                    - 정 호 승 -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축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