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삶을 노래하며

엄마일기(5월29일)

나무소리 2014. 5. 29. 11:52

근무 중 아내로 부터 문자가 왔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다'고......

무슨 일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선뜻 묻지를 못하겠다.

 

 퇴근해 집에 가니

잠깐 나갔다 온 사이 어머니가 기저귀를 다 빼버리고,

장농, 옷장을 뒤져 이불과 옷을 다 꺼내고

소, 대변을 다 묻혀 정리하고 세탁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푸념이다.

 

 그러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엄마 방에 들어가니 초점없이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신다.

"아들왔어."

묵묵부답에 아무 표정도 없으시다.

 

 알제리와 월드컵 평가전을 보기 위해 거실로 나와

엄마와 TV를 보며 기타 연습을 하는데 무조건 기타를 못치게 한다.

아들과 그냥 조용히 있고 싶으신가보다.

 

 잠자리에 누우시면 10초도 안돼 일으키라해 일으켜드리면 또 누우시고

의미 없는 이런 행동을 수백번 반복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우신다.

1시를 넘은 시간 밖으로 나가자는 표시로 자꾸 손을 잡고 뭐라 하신다.

안아 자리에서 일으켜드리니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 나가시려한다.

운동 겸 이리저리 몇 발짝 떼시더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아들 졸리니까 자자, 응??"

눈에는 졸음이 쏟아지지만 잠이 오지 않으시는지

방바닥에 드러 누우신다.

 

 왜 어머니가 잠못드시는지 궁금해 엄마자리에 가서 누워본다.

욕창방지를 위해 깔아 놓은 에어메트리스가 울퉁불퉁하다.

자리가 많이 불편하구나 생각하며 막 잠이 쏟아지는데

갑자기 메트리스의 돌기로 바람이 들어오면서 꿀렁꿀렁 멀미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뱀이 자리 밑으로 지나가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가만히 누워보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에어메트리스의 바람은 2-3분 간격으로 돌아다니는데

그 때의 느낌이  마치 차 멀미 같기도 하고,

바이킹을 타는 느낌 같기도 하고,

지네나 뱀이 잠자리 아래로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아, 잠 못 드시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은 아닐까?'

기저귀를 갈며 시계를 보니 2시를 지나고 있다.

아내가 들어와 당신이 있으면 이상하게 더 어리광이라고

그냥 혼자 주무시게하지 하란다.

 

 '내 어릴 때 어리광을 어머니가 다 받아줬는데

어머니의 어리광을 못받아드린다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메트리스를 빼야겠다고 상황을 설명하니

욕창 생기면 어쩔꺼냐고 짜증이다.

 

 맨 바닥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서 나라히 누워

비몽사몽 자다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흔들어 깨우신다.

아침 6시 15분이다.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에 지친 눈으로

무표정하게 바라보신다.

 

 "엄마, 왜 그리 못주무셔.. 기저귀 갈자"

 

  아침 먹고 출근하려 문을 여니 곤히 주무신다.

 그렇게라도 낮이라도 푹 좀 주무시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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