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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행복론과 인생론

나무소리 2013. 3. 5. 17:11

  30여 년 전 읽다 던져버린 책.

이번에도 읽어 내려가면서도 또 다시 그런 충동이 몇 번 일었지만 인내를 갖고 끝까지 읽었고, 다 읽고 나니 뭔가를 해낸 느낌과 함께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던 중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첫째, 행복론이나 인생론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로 단순하고 주관이라는 것.

둘째, 간간히 실생활의 현상을 기록해놓긴 했지만 너무 학술적이라는 것.

셋째, 한 가지 주제의 논지를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중복되는 느낌.

이 외 다른 요인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 세 가지로 보여진다.

 

  끝까지 읽어 내려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나 사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것 뿐 아니라 단편적이면서도 주관이 강한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20대 때 읽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인 사고로 황폐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즉, 고통뿐인 현실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덜 불행해지려 노력하고,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일을 해결함에 있어 불행이 전제조건이 되어 나를 얽맨다는 사고가 고착 돼 은둔자적인 삶이나 비관론자가 됐지 싶다.

 

  책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면 [행복론]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있어 행복이란 본래부터 없는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되고 고통을 피하는 것으로 행복을 치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행복의 원천은 건강에 의해 좌우되고, 그 건강에는 육체적, 정신적인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탁월하고 풍부한 개성을 가진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강 다음으로는 우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수단은 아무 걱정없이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과 지혜이며, 그 외의 것은 다 부질 없는 것으로 고독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고 철저한 은둔 상태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한다.

 

 인간이 사교적으로 되는 것은 고독한 상태를 견딜 수 없기 때문으로 극심한 추위가 닥치면 사람들이 서로 모여들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사교성이란 사람들의 정신을 서로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스스로 정신적 온기를 지닌 사람은 사교성 자체가 필요치 않다고 한다.

 

 건강에 대해 건강한 동안에는 온몸에 고통을 주어 좋지 않은 영향에 저항할 수 있도록 습관을 기르고 몸을 단념해야한다는 논지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나 고통이 없는 순간에는 고통을 가하므로 고통이 생길 때 그 내성으로 고통을 덜 느끼게 하라는 논지에선 행복론을 뛰어 넘어 자학론으로 생각될 정도다.

 

  자신의 결점을 깨닫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비난하라, 가장 친한 친구가 불행을 당하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기분이라, 여성을 인간의 한 주체로써가 아닌 하등동물로 취급하는 것 등에서는 그의 정신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인생론]에 있어

그의 사상은 반기독교적이면서 인도의 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어 인간은 살아가는 자체가 고통으로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행해야하며, 우리 삶에는 한 순간만 존재하고, 그 후에는 존재했다는 것이 되므로 현재를 즐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고, 현재가 아닌 것은 사고의 유희에 불과라고 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욕과 성욕이라는 두 개의 간단한 원동력과 거기에 동반하는 무료함에 의해 쉼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무료함이란 생존의 공허함을 설명하는데 그러면서도 자살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세계의 비극과 타인의 고통의 양을 줄여야하는데 자살은 오히려 비극과 고통을 늘리는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는 비극과 고통을 우주의 총량제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논지가 없다.

 

  인생론 전체적인 구성은 인간의 본질, 생존의 허망함, 세상의 고뇌, 자살, 종교, 지식, 독자적 사고, 저술, 독서, 여성, 우화 및 시 등에 대해 하나씩 서술하면서 인간의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허망한 것으로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말한다.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면서 특히 여성에 대한 비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될 만큼의 모멸찬 이론을 펴나가고, 책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것으로 아이들에게 읽게 해서는 안된다든지 고슴도치의 예(464쪽)를 들어가면서 인간은 인간에게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주장이다.

 

  책의 말미에 해설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 해설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 옳지는 않지만 한번쯤 생각을 해봐야하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는 논지로 부언돼 있다. 쇼펜하우어는 궁극적으로 비극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상태인 해탈을 주장하는데 금욕과 무의지에 의해 비로소 진정한 해탈이 가능하며, 삶의 의지 부정이란 자살이 아니라 해탈, 즉 범아일여에 의한 것이라는 인도 불교의 요소를 띤 염세적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