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책마을 산책

[톨스토이] 부활

나무소리 2013. 2. 5. 21:29

  2005년에 이 책을 읽었으니 7년 만에 다시 읽었다.

당시 신원출판사에서 이동현님이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 번역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책보다 직역에 훨씬 가까운 느낌이다 보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문맥의 흐름도 약간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 아쉬움이 있다.

 

  우선 이 작품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배경에서 씌어졌으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원출판사의 작품해설을 살펴보면

이 책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톨스토이가 단편소설로 쓰라고 권유를 했고,

결국 자신이 한 여자를 농락해 임신을 시킨 것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합성해 이 소설이 씌어 지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독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누군가에 의해 이 땅에 보내졌는데

그렇다면 우리를 이 땅에 보낸 주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주인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서는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빚게 된다고 말한다.

그 목적은 기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성경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킴으로 이 땅에 신의 나라가 건설되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당시 러시아의 정치, 경제, 법률, 사회, 문화의 구조적인 모순과 비인간적인 계급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그 모순의 개혁과 인간성 회복을 촉구하는 사회고발을 목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네흘류도프가 카튜샤는 서로 사랑을 했다고 하지만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네흘류도프의 우월감에서 카튜샤를 버리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못하고,

카튜샤는 마음의 상처와 여러 가지 상황의 악화로 사창가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

 

  네흘류도프가 죄없는 카튜샤의 살인 사건 배심원으로 참석하면서 처음 죄책감을 느끼고

잘못된 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껴 카튜샤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그녀의 유배지로 함께 따라가면서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지주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법률가인 재판장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며,

권위주의적인 관료, 교도소에서의 인권 유린하는 모습,

아무런 죄도 없이 억류당하는 수감자들의 모습 등을 눈으로 보는 듯 상세히 그려놓은 것을 보면

주인공인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설정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 양심의 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였으며,

내면의 소리가 외치는 대로 얼마나 행동했는가를 한번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카튜샤보다 더 타락한 삶을 살다가 네흘류도프같은 좋은 사람들을 통해 이나마 살아가면서

마치 내가 네흘류도프처럼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척했던 건 아닌지 나를 돌아본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김용준 총리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고,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이 문제되고 있는 이 때

100여 년 전 러시아 관료들의 도덕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에 몹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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