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인자요산 지자요수

지리산(노고단~반야봉~뱀사골)

나무소리 2009. 8. 27. 17:29

일시 : 2005. 8. 5

 

하나 둘씩 사직동 체육관으로 모여드는 군상.


남들 잠잘 시간 편한 잠자리 뒤로하고,

그저 들뜬 마음으로 등에 짊어지고,

보따리를 들고 오는 저 사람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지 싶은데......


상호명 : 산내음 동물농장.

섹  타 : 보은관광 우리.

호  실 : 뒤쪽 동물사육장.


일설에 의하면 보은관광 사육장에 있는 두어명이

‘E 마트를 통째로 들고 왔다던가?

아니 LG마트를 싸 짊어지고 왔다지 아마......‘


차에 앉으면서부터 방아를 찧는다.

방울토마토는 왼쪽 믹서기로 갈고,

에이스는 오른쪽 맷돌로 갈기 바쁜데

운영진에서 떡 방아까지 빻으라고 하니......


중간에 기름이 부족해서 잘 안돌아간다고

비타 500까지 공급을 해 기름칠을 하니 방아는 더 잘 돌아갈 수 밖에......


방아를 빻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라이트가 자꾸 껌빡이며,

콩 심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비몽사몽간 어물쩍거리다 보니 반선이 보이고,

10여분을 더 올라가니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에서

빨지산의 집합소로 나타나는 달궁에 도착한다.


[태백산맥]의 좌익 행동대원에서 시작해

조계산지구 사령관이 되는 하대치가 여기서 씨름을 했다는데......


일단 차에서 하차를 하니

물이 잔뜩 차 앞에 붙은 꼬리가 팅팅 불어 잔뜩 커졌으니

좀 편하자고  꼬리에 담겨진  물을 덜어낸다.


‘휴~~!!  그나마 남자들은 꼬리가 있어 행복혀~~!!

작업도 아주 간단하고......

꼬리가 없는 분들 물 빼기 작업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지.....

 

허리띠 풀어 바지와 아랫런닝구를 무릎까지 까 내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노출부위가 많아 남들 눈치 봐야하고,

전체 면적의 2/3쯤 노출을 시키다 보니

요즘 같은 여름철 모기는 달려들어 뜯어대지

더러 되지 못한 날파리까지 힐끔거리니 그것 참~~~


'어이~~!!!  시원하다...‘


20분쯤 오르니 성삼재.

다들 본드를 마시고 올라왔는지

국상(國喪)에 개다리 꼬이 듯 다리가 꼬인다.


야행성 동물이 되어 3시 반쯤 탄광촌 광부같이 이마에 개똥벌레를 얹고

앞사람 등산화 뒤꿈치만을 보고 넓은 길을 따라 오르니 노고단.


일출에 대한 환상은 바람에 날려가고

방향없이 먹이를 찾는 박쥐와 함께

졸린 눈을 치켜뜨느라 주름살만 늘어간다.


여기 오는 동안 계속 방아를 찧어

가마니가 그득하니 더욱 졸릴 수 밖에......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의 안내를 받아

노고단 정상까지 오르는 행운 포착.


생산성 좋은 넉넉한 아낙의 엉덩이같은 반야봉.

좌우로 넓게 트인 노고단의 편안한 자태.

어쩌면 지리산의 편안함은 노고단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아낙의 엉덩이가 신경이 쓰이는지

힐끗 반야봉을 곁눈질으로 쳐다보며 태양이 떠오른다.

 

잘게 부서져 하늘을 붉게 물들이니

운무도 눈이 부신지 자리를 비껴선다.

일출의 감동과 함께 산내음 동물 농장의 식구들은

설레인 만큼 기쁨을 얻고 , 태양의 기운을 한껏 받는다.


이거 기운만 받으면 뭐하노

더운 여름철 써먹으려면 땀띠 날낀데......

 

노고단의 넓게 펼쳐진 길을 내려서며

우리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로또 당첨 되세요~~~!!”

옆에 있는 산님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 인사에 뭐 문제 있나???'

인사가 별건가?

서로에게 기쁨과 정을 나누는거 아닌가??‘


노고단에서 천황봉 방향.

어둠이 지나간 길을 바람이 뒤따르고,

바람이 내 놓은 길을 햇살이 더듬어 가고,

햇살이 더듬은 길은 산내음의 발길이 북적이는데

그 중 하나의 군상이 되어 졸린 눈을 껌뻑이며 내 발걸음도 뒤따른다.

 

반야봉으로 가는 길 전망이 전혀 없다.

느낌?? 더 없다.

생각?? 당연히 아무것도 없지. 그냥  졸릴 뿐......


작년 6월 지리산을 종주를 마치고,

동서에게 한 말.

“지리산 종주하면서 뭘 봤어??”

“글쎄~!!  돌하고, 계단하고, 앞사람 등산화만 봤어유...”


정답이다.

수차례 지리산 종주를 이리저리 해 보고,

각 봉을 오를 때 마다 생각하는 것은 지리산은 별로 보여주는 것이 없다.


그래도 난 열심히 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보여주는 것이 없을 지라도

내게 뭔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산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보는 산이라면 지리산은 느끼는 산.


설악산이 잘 생긴 미남의 청년이라면

지리산은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산.


구수한 숭늉 냄새가 나기도 하고,

아주 작게 느껴지는 구절초 냄새가 나기도 하고..

더러는 조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느껴지기도 하고......


노루목에서 몇 장의 사진.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찍힐 뿐.

몇몇 산님은 사진이고 뭐고 청산가리 먹은 꿩처럼 나뒹굴고......


노루목에서 반야봉 가까운 거리건만

함께한 일행들이 힘들어하는 탓에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오르는 길 중간쯤에서 능선을 잡고 올라서니

습기를 잔뜩 먹은 안개가 볼을 어루만진다.

‘아~~!!! 시원하다....

이 맛~~!!! 그래 이 맛이야~!!‘


지혜의 반야봉.

돌무덤에 표지석 하나씩.

힘들게 올라온 일행들은 뭐가 못마땅한지

“여기가 반야봉???”

이 한마디로 모든 걸 대변한다.

 

반야봉에서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

무거운 다리를 끌고 가는 폼들이

신혼 첫날 초야를 치른 부부들 처럼 비틀비틀..

 

600계단이라는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가며,

이쁜 얼굴들도 일그러지고,

허름한 얼굴은 더욱 일그러지고,

앞에 꼬리 달린 짐승들은 엉뚱한 생각들을 한다.

 

'여자 등산복은 미니스커트 안나오나???

 그거 입고 오면 저 아래서 하루 종일 서있을텐데.....'

 (이거 누구 생각인지 다들 알쥬?????

  하긴 꼬리없는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할지 누가아나....)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경계인 삼도봉.

뾰족한 삼도봉의 표지석이 인상적이다.

산 정상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넓게 주어진 공간과

노고단을 시원하게 볼수 있는 너럭바위에서

한 아름의 바람으로 피로를 날린다.

 

내리막 길에 발을 떼며,

습한 바람 속으로 빨려들 듯 미끄러진다.

 

토기봉을 눈 앞에 두고, 뱀사골을 보니 뱃속이 반가워 한다.

'이구 진짜 쥔 잘못만나 죽것네...

 허구헌날 산을 다닌다고 맨날 때도 못찾아 먹고.....'

 

뱀사골에서의 풍성한 식단

호박잎을 싸온 고추세가마와 딸딸모님.

찌게를 끓였다고 함께 먹자는 오뚜기님.

라면을 끓였다는 세균맨과  불당골님.

 

'이거 다 먹으면 배 찢어지는데......'

 

산내음 식구 중 누구는 손을 베었다고 약이 필요하고,

누구는 발에 물집이 잡혔다고 밴드가 필요하고,

또 어떤이는 무릎 보호대가 필요하고,

누군 더위를 먹었는지 두통약이 필요하고,

졸지에 내과, 재활의학과, 외과 돌팔이 의사에 의료 보조기구 대여점을 하게 되니.....

 

뱃속에 잔뜩 집어 넣으니 세상이 똑바로 보인다.

땀과 졸음에 뒤범벅이 돼 게슴체레해도 이쁘게만 보이던 산내음 아줌씨들이

거시기하게 뵈는 걸 보니 배부르면 잘 보이나 보다.

(여기서 거시기란 [더 이쁘다]는 뜻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11시 16분이니 

무쟈게 배고플 때니 이글을 쓰고 있으니......)

 

계곡의 시냇물 소리.

시원한 계곡을 타는 바람소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매미소리.

그 가운데 조용한 미소를 짓는 산수국 들.

 

간장소에 못미쳐 뱀사골 계곡에서 땀을 들이고

다시 발길을 재촉해 간장소에서

빛그림, 머루, 고추세가마를 포함한 나까지 풍덩.

 

여름.

[열리다]의 명사형이라고 한다.

꽃의 희생을 통해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는 계절.

 

적지 않은 삶을 살면서

나는 내 삶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는지......

 

지리산 산행 후 [먹뱅이]님의 슬픈 소식을 접한 우리들.

그렇다고 항상 주저 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이젠 우리 모두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그가 늘 바라보며 좋아했던 산.

그리고, 이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좋아하는 산.

끝없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

거길 삶을 나누면서 함께 가지요.

 

삶에 아픔이 있을 때 그 아픔을 입에 물고......

삶에 찌들었을 때 그 모든 것을 등에 지고......

 

그리고, 우선 지금은 자리에서 일어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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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 후 함께 산행을 했던 [먹뱅이]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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