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창고/인자요산 지자요수

북한산(비봉~사모봉)

나무소리 2009. 8. 27. 16:40

산행지 : 북한산  비봉~ 사모봉까지

산행일 : 2007. 8. 12

 

[팔자 사나운 강아지 잠만 자면 호랑이 나타난다]는데

산에 가려고 보따리만 싸면 꼭 비가 쏟아진다.


한주일 휴가를 보내면서 하루도 숨통을 열어주지 않고 비가내리고

더러 아침에 좋다 생각하면 말끔하던 하늘이 갑자기 폭우를 쏟고 뒤돌아가며

그쳤는가 싶어 슬쩍 보따리를 싸 산으로 올라가면

뒤통수를 갈기고 지나가니 내가 세상을 거시기 같이 살았나보다.

(여기서 거시기란 남자의 앞에 달린 꼬리와는 조금 유사할 수 있음)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어떤 인사가 [게릴라성 폭우]라 했는데

진짜 말 한번 그럴 듯하게 만들었지 싶다.

날씨야 하늘이 만드는데 하늘보기에 꼴 같쟎게 살아온 내 탓 이려니.....


[이 아픈 날 콩밥 하란다]더니 우리 안방마님이 꼭 그 짝이다.


59년 동갑내기 친구들과 산행하기로 약속한 오늘(12일)

고향 가본지 오래됐으니 낼 같이 고향이나 가자고 어제 그러는데

이미 된 약속을 깨서는 안되겠고, 그 보다 좋은 친구들이 보고 싶기에

아내는 잠도 깨지 않은 아침 6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타니 이른 시간 탓인지 승객은 나까지 3명인데

맨 앞자리엔 풍년 박만큼이나 커다란 젖통을 달린 아주머니 한분이

뻑뻑 하품을 하며 한심하다는 듯 배낭을 쳐다본다.


‘이그~! 목 젖 떨어질라~!!!’


고속버스에서 내려 지하철 노선표를 세심하게 점검하면서

허름한 식당에서 된장찌개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어리버리한 촌놈이 역이름과 노선을 몇 번 확인하고

겨우 전철을 올라탔다.


‘에그~!! 불광역이 뭐야,

 이왕이면 똥광이나 팔광쯤되면 일부러 안외워도 될텐데’


지하철 노선표를 몇 번이나 보고 확인해서

근근덕신 잊지 않고 불광역에 내려 ②번 출구를 찾아

친구들을 만나 자판기 커피를 나누며 만남의 기쁨을 맛보는데

대부분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동안 빈대 등짝만한 내 번죽으로는

어색하고 뻘쭘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빨리 산에나 올라가지.  그럼 어색한 분위기를 떨칠 수 있을텐데.....’


불광동 2번 출구를 빠져나오니 뇨실금걸린 아줌마 오줌발처럼

자꾸 찔끔거리는 하늘이 야속하기도 하건만

산행을 한다는 여유로움과 함께하는 반가운 친구들이 있어

소풍을 가는 어린애처럼 은근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터널 입구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는 산행 들머리에서야

‘이제 산행이 시작 되는구나’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하다.


그리 많챦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자리를 잡고

이제 푹 익어 제 맛이 나는 여름 끝자락의 맛을 보는 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산에 오르는 우리 일행을 한심한 듯 쳐다본다.


10분도 채 못가 맥주병의 목을 비틀어 대니

운명을 다한 맥주병은 칙~ 소리 한번으로 운명을 하고

우리의 목 줄기를 시원하게 훑고 지나면서 산행의 맛을 돋우어준다.

 

'네(맥주병) 희생이 우릴 행복하게 하는구나.

 어떤 희생, 어떤 죽음은 또 다른 행복일 수도 있구나.'


향로봉 갈림길에서 향로봉 방면으로 산행하길 간절히 바랬으나

나의 바램은 땀방울과 함께 사라지고

안전한 산행 길로 선두 길잡이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1시간 가까이 오르는 산행을 통해 조금은 편한 사이가 됐지만

어디서도 쉽게 사람과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 탓에 조금은 어렵고,

입에서 자꾸 튀어나오는 존대어에 좋은 분위기의 친구들이 머쓱해 하니

오히려 분위기를 깨는 기분에 어찌나 미안한지.....

 

'시거든 떫지나 말라'더니 찔끔거리는 비와 함께

정상 헬기장에 도착하니 태풍을 몰고 듯한 만만챦은 바람이

식사를 하기에 자못 섬성그르게 느껴진다.


나침판을 놓고 동서남북을 가늠하면서

시원하고 장쾌하게 발부리를 밑으로 뻗어 내린 북한산의 능선에 감탄을 하며

삶에서 찌든 내 눈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이 기쁨과

웅장한 무게감과 함께 빙긋이 웃는 모습의  사모바위는

자만에 빠진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이렇게 저렇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산의 발톱을 쪼아

아파트, 빌라, 무슨 빌딩으로 서있는 인간의 문명 속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넉넉한 품으로 의연하게 운무를 품고

서울을 품고, 자신을 쪼아대는 인간을 품는 그 넉넉함.

 

그 북한산이 있기에 서울이 아름다울 수 있구나.....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간 곳 중 바람이 적은 곳을 택해

적당한 자리를 식당으로 정하고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놓은데

‘아차~~!! 아침에 도시락 준비를 안했구나’ 생각에 민망하면서도

맘 넉넉한 친구들이 있기에 그저 편하게 빌붙어 식사를 한다.


[말 한마리 다 쳐 먹고 말똥냄새 난다]고 헛소리 한다더니

올라오는 길에 주는 대로 맥주고 막걸리고 받아먹고는

점심과 함께 돌아가는 막걸리 잔을 두어번  사양하다  낼름 받아 마신다.


점심을 먹고 승가사 방면으로 하산 길을 잡는데

비봉능선을 타지 못한 아쉬움이 몹시 크게 느껴지지만

오늘 하루는 산행만큼이나  중요한 친구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승가사라는 절의 이름을 보면서 자꾸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여기를 언제와 봤던가를 자꾸만 기억 속에서 더듬는데

승가사가 아닌 고흥 팔영산 아래 능가사였구나 생각을 한다.

 

역시 나는 머리가 무지 단단하구나 실감을 하며

계곡 속에 발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는 계곡이 씻어준다.


'하산과 동시에 바로 청주로 내려가야겠다' 생각하는데

뒷 풀이 맥주한잔 하고 가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맞다, 굿 구경은 떡 나올 때까지 하라’는데

뒷풀이에 참석해 얼굴이라도 익히고 가기로 생각을 바꿨다.


부딪치는 잔의 상큼한 소리에서 편안함이 싹 트고,

시끄러운 대화와 조금은 농익은 농담 속에 정이 돋는다.


행여 분위기를 깰까 온다는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자리를 떨친다.


아쉬움

그건 또 다른 반가운 만남의 씨앗으로 가져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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