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호주가 경기 종료 8분을 남겨놓고 3골을 넣어 일본을 3:1로 완승을 했고,
체코는 미국을 3:0으로 미국을 쪽팔리게 하면서
독일 월드컵은 내 일상과 무관하게 재미를 더해간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을 깼다.
이제 고3인 작은 아들 하늘이는 대충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느라 집을 나서는데 불러 세운다.
“하늘아~!
형님이 군대 가 2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하니 얼굴이나 보고 학교 가라~“
말이 입을 삐져나오면서 마음이 답답하다.
이불 속에서 인사를 받는 큰놈이나 가방을 둘러메고 멋쩍게 인사하는 작은 놈이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쑥스런가 보다.
늙은 옥수수수염처럼 윤기없이 부스스한 은색머리에
빨래 줄에 걸려있는 목 늘어진 양말처럼
여든 넷의 초라한 어머니께서 잠자리를 떨치고
젖 뗀 송아지의 젖은 눈망울같은 맑은 표정으로 거실로 나오신다.
갈퀴같은 손가락 속에 초라하게 꾸겨진 돈 2만원을
서너 배는 큼직한 손자의 손에 쥐어주는 눈에는
맑은 하늘에서 반짝 빛나는 별 같은 눈물이 담겨져 있다.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 주는 돈을 마다하는데
“할미가 주는 거니까 받어.”라는 말이 목에 걸려 선뜻 나오지 않는데
“그래 할머니가 주는 거니까 받아라.” 한마디를 보탠다.
이렇게 큰 아들 수리가 군입대하는 날은 시작됐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아침상을 놓고,
입맛 없다고 마다하는 아들에게
“군대가서는 맛보기 어려운 된장국이니 먹어둬.”한마디 던지니
별맛 나지 않는 밥을 별 생각없이 꾸역꾸역 입으로 몰아넣는다.
(하긴 뭐 언제 생각하면서 밥 먹었나? 때 되니 먹지..)
답답함이 함께 씹히는 아침밥이라 그런지
목구멍에 넘기기가 덜 삶긴 보리밥만큼이나 껄끄럽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나서려는 아들에게
“집에서 마지막 가정예배를 드리고 가자.
찬송가 343장을 같이 부르자.”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x2)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x2)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 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x2)
“어머니가 기도 하세요”
틀니를 빼 놓으신 탓에 어눌한 발음으로
“이제까지 건강하게 키워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제대하는 날까지 지켜 보호해주심을 믿습니다.“는 기도를 뼛속 깊은 곳에서 퍼 올린다.
“성경말씀은 여호수아 1장 5절부터 9절까지 보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게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모세가 죽기 전 여호수아에게 한 유언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닥쳐오는 어려움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때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니 꼭 명심하길 바란다.“
잠깐 드려지는 예배가 아들의 귀에 들리지 않겠지만
군에서 힘들고 어렵거나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할머니와 가족을 기억하라는 뜻에서 예배를 드렸다.
“할머니에게 절하고 가야지”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몹시 쓸쓸해 보이고,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다.
엉거주춤 안절부절하는 어머니의 입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한마디 말이 터져 나온다.
“잘 갔다 와!”하는 눈물 글썽이는......
8시 50분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검은 가방을 둘러메고 나서는 아들 수리와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나서는 아내와 나.
흰 고무신을 신고 나서는 내게 아내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다른 신발 신지. 아는 사람만나면 창피하게......”
“내비 둬라. 애비는 대핵교 다닐도 그랬는 걸 뭘.....”
97년 11월 식 갈대색 누비라 충북31거 4985호 고물차는
아쉬움이 바람에 날아가도록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을
무서운 기세로 미끄러져 간다.
뒷좌석에서 MP3를 귀에 꼽고,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던
큰아들 수리가 착잡함 때문인지 잠시 눈을 감고 뒤로 눕고,
아내는 옆에서 열심히 졸고 있다.
이천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만에 나오는 아들에게
한동안 먹지 못할 그 무엇하나라도 먹이고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사이다나 한 병 먹겠단다.
‘500미리짜리 칠성사이다 한 병.
그래 그게 별거 아녀도 훈련받을 때는 생각날 수도 있지.‘
27년 전
여자 친구 하나 없이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군 입대를 할 때
어딘지 모르게 섭섭함도 있었는데 그 때의 나와 다를 바 없이
그 애비의 그자식인 아들놈 역시 여자 친구 배웅도 없이
소득없는 교회선후배들에게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는다.
‘이구 지지배 꼬시는 재주도 지질이 없이 허름하기는......’
11시경 의정부에 도착해 부대를 확인하고,
용현동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작은 미용실에서
언제 가위 맛을 보았는지 기억도 못하는 머리를 깎는다.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에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20년의 편안한 삶이 떨어지고,
나태하고 방만했던 대학생활이 떨어지고,
집에서 들어야 했던 잔소리가 떨어지고,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습관이 떨어진다.
‘눈물도 떨어지겠지.....’
짧게 머리를 깎고 나니 인물이 훤하다.
“잘생긴 내 아들”
하지만 본인은 정작 어색한지 아니면 입대를 실감한 탓인지
“머리카락 가지고 나올 걸”하며 볼멘소리와 함께 모자를 푹 눌러쓴다.
의정부 역 부근 감자탕 집에서 중간 크기의 감자탕을 하나 놓고
맛있을 리 없는 감자탕을 엉글엉글 목구멍으로 넘긴다.
라면 사리를 하나 넣고 젓가락질 하지만
헝클어진 마음 탓인지 라면은 젓가락에 걸리지 않는다.
306보충대대를 들어가는 입구 좌우에는
신발깔창, 전자시계 등을 파는 장삿꾼들과
심지어 보험 모집인까지 장사진을 이루는 인간시장.
수백의 차량과 수천의 인파들 속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입대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드니
“오늘 입소하는 장정들...(어쩌구 저쩌구)”하는
전에 귀에 들어오지 않는 소리가 나오는데
내가 입대했던 27년 전에도 [장정]이라는 말을 썼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눈시울이 붉어진 머리 짧은 청년들과
뭔가 잃어버린 듯한 내 또래의 엄마, 아버지들.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은 아릿한 마음이려니......
지갑을 뒤적여 “이거 뺏길 수도 있는데......”하며 건네는
100원권 중국지폐 한 장과 만원권 문화상품권 한 장.
‘그래 이제 네가 정말 가는 구나’
가슴이 뭉클하고 답답한지 슬며시 손을 놓고 “저 갈께요.” 이 한마디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도 없이 급히 뛰어간다.
‘눈물도 많고 맘 약한 녀석이 오죽 할까,
마음속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지겠지.’
형식적인 입소식이 시작되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데
“나는 자랑스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라는데
정말 내 조국이 자랑스러운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위했는데 발전이 됐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대대장의 훈시가 있고, 군가제창이 있다.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진짜사나이]를 부르는데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는지, 앞으로 살아갈 건지 생각보다
예나 지금이나 저 노래는 변함이 없다는 어정쩡한 생각이 먼저든다.
입소식을 마치고, 내무반에 입소하는 시간.
아직도 품속의 갓난아기처럼 생각되는 자식을 찾아
단 한번, 단 몇 초만이라도 자식의 모습을 보기위해
연병장에 뛰어 들어가는 부모들 틈에 섞여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내무반 앞으로 뛰어간다.
“수리야~! 수리야~!”를 연발하는 잔뜩 가라앉은 아내의 목소리에
목구멍을 후끈하게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혹시 잠깐이라도 보지 못할까 안타까워하는데
사슴같은 눈망울을 하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수리가 눈에 띈다.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끌어안는 아들을 끌어안고
‘아들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던져주지 못하고
‘아빠는 너를 믿는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한마디를 남겨주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낼 수밖에는 없는 어버이 마음.
청주로 내려오는 길은 멀기도 하다.
‘나중에 휴가 올 때 수리가 꽤 힘들겠구나.’ 생각하며
가라앉지 않은 마음으로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코 골며 잠든 아내가 야속하기도하고,
지난 밤 잠 못 들었을 엄마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며,
머릿속은 메두사의 머리처럼 뒤죽박죽 복잡하기만 하다.
오늘의 이 감정을 아들에게 글로 써 보리라.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수리를 정말 사랑하고,
표현방법이 각각 다르겠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은 지금의 나와 같다고.....
또한,
삶 속에서 외롭고 힘들 때
늘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가 있음을 믿고,
자식을 믿어주는 아버지가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믿음에 등돌리지 말라고.....
수리생각으로 뒤범벅이 된 머릿속에서
이제야 부모마음을 조금 깨닫게 되면서
손은 말랐지만 늘 눈은 젖어 있고 가슴은 바닷물같은 사랑이 넘쳐나는 어머니를 기억한다.
‘자식 셋을 군에 보냈던 어머니 마음은 어떠했을까?
유난히 맘 약하고 정 많으셨던 아버지는 또 어떠했을까?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큰며느리를 돌아오지 못할 먼 하늘로 먼저 보내고,
둘째아들을 자신의 마른 손으로 땅에 묻어야 했던 내 어머니의 가슴 속은
이미 모든 것이 다 타버려 재마저 남아있지 않은 내 어머니......
수리가 입소한 그날 밤
작은아들 고3 하늘이는 토고와의 월드컵 경기로
보충수업 없이 일찍 끝나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왔다.
큰 아들이 월드컵을 보든 말든
그 녀석이 착잡함에 잠을 이루든 말든 피자한판을 먹으며
2:1로 이겼지만 찝찝하다고 떠드는 가운데 우린 잠을 자야하는
평범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온다.
먹는다는 것은 풍요로움 속에서 또 다른 아픔을 씹는 경우도 있다.
잠자리에서 아들 생각이 유난히 짙다.
‘평소에도 유난히 늦게 자녀석이 지금은 잠이 들었을까?’
2006. 6.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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