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워낭소리(old partner)
일 시 : 2009. 2. 6(금요일)
장 소 : CGV 서문
관람자 : 어머니를 비롯한 5식구.
다큐멘타리 영화가 그리 익숙하지가 않지만 각종 언론매체와 함께
인터넷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워낭소리”를 보기 위해
거동이 불편하신 여든일곱의 노모를 모시고 온가족이 함께 극장을 찾았다.
“땡그랑” 워낭소리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워낭소리?] 그게 뭔지 몰랐다.
“엄마 워낭소리가 뭐여?”
어머니 말씀이 소 목에 매는 방울을 워낭소리라고 하신다.
마치 본래 천지가 창조될 때 그냥 존재했던 자연처럼 좋고 나쁨의 아무런 표정도,
삶에도 변화없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그 삶의 곁에 꼭 있어야만 할 것이 있는 것처럼 30년을 함께 살아온 소.
할아버지는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라면서
“이 소가 죽으면 나도 죽을거래. 이 소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데......” 라는 말에서
소는 바로 자신이고,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소를 위해 자신이 살아가는 듯 말한다.
스스로 살아온 소 같은 고집과 뒷걸음질을 모르고
앞으로만 빠르지 않아도 결코 쉬지 않는 삶의 길......
“에이그, 나무는 바람 불면 흔들리기라도 하지.”
어떤 말에도 소처럼 묵묵히 고집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탓하면서도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거 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밖에 좋은 게 없어“라는 말 또한
고단하고 쉽지 않은 할머니의 삶을 말한다.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일그러져 주저 앉을 거 같은 잘못 만들어진 목마처럼
비쩍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와 함께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천천히 가는 뒷모습과
“소가 업이래”, “농약을 하면 소가 죽지”라는 말과 함께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늘 심한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스스로 부쩍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이 슬프지 않을까?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웃어, 웃어 봐요”라는 할머니의 외침은 게오르규의 [25시]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요한 모리츠”에게 말하는 사진기자의 말처럼 들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시장에 소를 팔러가는 모습에서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는 소의 눈물에서 눈물이 왈칵 솟는다.
‘그 소는 어떤 생각, 아니 어떤 마음에서 그 눈물을 떨어뜨렸을까?
말할 수 없기에 더 느낄 수 있는 게 마음이구나.’
“저 소가 죽어야지” “소가 업이여”하는 눈물을 훔쳐내는 할머니 모습은
목놓아 울부지는 절규보다 더 아프다.
한쪽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소의 코뚜레를 풀어내며,
“좋은데 가거라.”
일생에 단 한번 할아버지의 기도가 되고,
평생 매일 쌓았던 자신의 공덕을 한꺼번에 내어주는 축복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어머님은 힘드셨는지 가쁘게 숨을 몇 차례 몰아쉬신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힘드세요?”를 서너번 물어봐도 "괜찮다"고 고갤 저으시며,
자꾸만 눈물을 훔치신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워낭소리]라는 제목에서 영어 제목이 [old partner]로 표기 되어있었는데
극장을 떠나면서 [old family]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Partner는 남과 남이 만나 가족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는 의미로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Family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관계도 가족이라는 의미가 한 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의미에서
동반자라는 의미보다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를 모시고,
[서문제과]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영화보다 나를 더 행복 한 것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
이런 행복이 언제까지 내게 주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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