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공연관람후기

[관람후기] 워낭소리

나무소리 2009. 2. 9. 17:11

제 목 : 워낭소리(old partner)

일 시 : 2009. 2. 6(금요일)

장 소 : CGV 서문

관람자 : 어머니를 비롯한 5식구.

 

다큐멘타리 영화가 그리 익숙하지가 않지만 각종 언론매체와 함께

인터넷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워낭소리를 보기 위해

거동이 불편하신 여든일곱의 노모를 모시고 온가족이 함께 극장을 찾았다.

 

땡그랑워낭소리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워낭소리?] 그게 뭔지 몰랐다.

엄마 워낭소리가 뭐여?”

어머니 말씀이 소 목에 매는 방울을 워낭소리라고 하신다.

 

 마치 본래 천지가 창조될 때 그냥 존재했던 자연처럼 좋고 나쁨의 아무런 표정도,

삶에도 변화없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그 삶의 곁에 꼭 있어야만 할 것이 있는 것처럼 30년을 함께 살아온 소.

 

 할아버지는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라면서

이 소가 죽으면 나도 죽을거래. 이 소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데......” 라는 말에서

소는 바로 자신이고,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소를 위해 자신이 살아가는 듯 말한다.

 

 스스로 살아온 소 같은 고집과 뒷걸음질을 모르고

앞으로만 빠르지 않아도 결코 쉬지 않는 삶의 길......

 

 “에이그, 나무는 바람 불면 흔들리기라도 하지.”

어떤 말에도 소처럼 묵묵히 고집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탓하면서도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거 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하고 밖에 좋은 게 없어라는 말 또한

고단하고 쉽지 않은 할머니의 삶을 말한다.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일그러져 주저 앉을 거 같은 잘못 만들어진 목마처럼

비쩍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와 함께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천천히 가는 뒷모습과

 소가 업이래”, “농약을 하면 소가 죽지라는 말과 함께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늘 심한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스스로 부쩍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이 슬프지 않을까?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웃어, 웃어 봐요라는 할머니의 외침은 게오르규의 [25]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요한 모리츠에게 말하는 사진기자의 말처럼 들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시장에 소를 팔러가는 모습에서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는 소의 눈물에서 눈물이 왈칵 솟는다.

그 소는 어떤 생각, 아니 어떤 마음에서 그 눈물을 떨어뜨렸을까?

 말할 수 없기에 더 느낄 수 있는 게 마음이구나.’

 

 “저 소가 죽어야지” “소가 업이여하는 눈물을 훔쳐내는 할머니 모습은

목놓아 울부지는 절규보다 더 아프다.

 

  한쪽으로 쓰러져 죽어가는 소의 코뚜레를 풀어내며,

좋은데 가거라.”

일생에 단 한번 할아버지의 기도가 되고, 

평생 매일 쌓았던 자신의 공덕을 한꺼번에 내어주는 축복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어머님은 힘드셨는지 가쁘게 숨을 몇 차례 몰아쉬신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힘드세요?”를 서너번 물어봐도 "괜찮다"고 고갤 저으시며,

자꾸만 눈물을 훔치신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워낭소리]라는 제목에서 영어 제목이 [old partner]로 표기 되어있었는데

극장을 떠나면서 [old family]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Partner는 남과 남이 만나 가족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는 의미로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Family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관계도 가족이라는 의미가 한 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의미에서

동반자라는 의미보다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를 모시고,

[서문제과]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영화보다 나를 더 행복 한 것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

이런 행복이 언제까지 내게 주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