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거저나 마찬가지
참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책이다.
뭐가 깊다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삶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행복이나 아픔을 포함한 모든 것이 참 깊고, 넓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함으로 가치가 높아진 것을
마치 그 자체가 높았던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상대방의 노력이나 행복 또는 안타까움은 뒤로한 채
[거저나 마찬가지]로 치부하는 것.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의 전형이 아닐까?
자신이 그렇게 취급당하면 몹시 분노하면서도......
“그래 나 민중 사랑한다. 내가 민중이 아니니까.
가난뱅이가 가난 좋아하는 거 봤냐.
부자들이 한때 가난했던 걸 부풀려서 자랑거리로 삼지.“
라는 것으로 보아도 인간은 위선적인 동물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은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이유로
자식을 갖지 않으려던 남자에게 섹스를 거절하면서
소설의 다른 맛을 느끼게 하면서 작가는 기발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래, 나 거저나 마찬가지로 산다. 어쩔래? 그렇지만 섹스도 공짜로 하긴 싫어.
그렇겐 안할래.“
“그럼 너 나한테 화대를 내란 소리니?”
“어쭈, 오버도 할 줄 아네. 너만 그러라는 게 아냐.
나도 거저나 마찬가지 섹스는 안 할 거야. 대가를 치르잔 말야.
책임을 지자고. 너 날 조강치처나 마찬가지라고 했지.
너 언제까지 조강지처한테 장화 신고 찾아올래?“
주인공은 남자의 콘돔을 빼앗아 깔고 누워 사랑을 나눈 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로 소설이 끝난다.
이 글을 읽고 난 뒷맛은 은근히 캥기면서
끝부분을 읽을 때 오탁번 선생의 “굴비”가 문득 생각난다.
******************************************************
“가족 사이로는 비집고 들어가 칼잠을 자도 푸근하다.
그게 바로 가족이 좋다는 의미인 것이다.
엄마의 뱃속도 잠자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 세상이 따습고 포근하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것도 잠자리이다.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무조건적인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도
아마 이런 이 세상 최초의 감촉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구두만 높은 걸로 갈아 신어도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높은 구두는 생각보다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돈 얘기처럼 인간관계 속에 숨은 그럴듯한 허위의식을
신속하게 걷어내는 것도 없다.
'글 마당 > 책마을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완서]촛불 밝힌 식탁 (0) | 2009.01.22 |
---|---|
[박완서]후남아, 밥 먹어라. (0) | 2009.01.22 |
[박완서] 마흔아홉 살 (0) | 2009.01.22 |
[박완서] 그 남자네 집 (0) | 2009.01.22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0) | 2009.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