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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와 유미-은희경] 중에서...

나무소리 2008. 5. 30. 15:39

나는 '엄마는 내가 아무하고든 결혼만 했으면 싶은 거냐'고 대들었다.

언니가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결혼은 아무나하고 하는거야."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두 사람 각자의 계산은 모두 끝난다.

합산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할 일이 이제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일이다.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감정이란 변하고 사라지는 거야.

결혼은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하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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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속할 수 있다면 당신의 환부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종양 같은 것이 되어서 당신을 오래오래 아프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고통을 달래느라 나에게 쩔쩔매고 배려하고 보살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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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는다고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곁에 있다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위를 좀 크게 생각하면 됩니다.

같은 집이라거나 같은 장소가 아니라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은 살아가고 나는 그 어딘가의

당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이나 일 년 뒤가 아니고 십 년이나 이십 년 뒤면 어떻습니까.

언젠가는 만날 당신, 그 당신을 사랑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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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어머니가 올라오십니다. 이제 저는 결혼을 하기 위해 선을 보게 됩니다.

 

 상대를 고르는 데 오래 끌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방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나는 남편에게 헌신적이 될 것이며 내 머릿속에는 세상에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행복해질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일 때 나는 언제나 불행했습니다.

나를 불행하게 했던 당신,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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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뭔가 강한 것에 기대지 않으면 불안했어.

결혼 한 다음에야 그런 것에서 놓여났지.

결혼한 다음부터는 삶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누구를 의지하는 마음 없이 나 혼자 살아온 셈이니까.

그것을 영국에 갔을 때 깨달았던 거야.

 

혼자였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은희경의  [연미와 유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