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삶을 노래하며

추억을 지우는 아내(2008. 4. 28일)

나무소리 2008. 4. 28. 11:15

참 부부가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

 

몇 년 전 5년은 좀 넘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책꽂이를 뒤적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중학교,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

매일은 아니더라도 한주일이면 서너번씩 썼두었던 일기장이 30여권.

 

솔직히 초라한 하루하루의 삶이 뭐 그리 대단하랴.

별것도 아니지만 내게 있어선 참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고

더러는 아프기도 하고 조잡하기도 한 삶이지만

내겐 무엇보다 좋은 추억이기에 소중한 보물인 양 잘 모셔두었다.

 

두 아들 녀석이 커가면서 

내가 겪어 온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심리상태도 생각해 보고

지금의 문화와 그때 당시의 문화에 대한 비교도 할 겸해서

일기장을 보려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권도 없다.

 

책꽂이를 다 뒤집어 없고 찾아보았지만 한권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지난 추억들이

모두 아내가 버렸구나 하는 마음에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 날 난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엊그제 금요일(2008. 4. 25일)

책꽂이를 뒤적이다 또 한번 기겁을 하고 놀랄 일이 생겼다.

 

1991년 1월부터 지금까지 한달도 빼지 않고

정기구독을 하던 월간지 [좋은생각]이 어찌나 좋던지.

 

그 책을 매일 보면서 일과를 시작하면서

출장을 갈 일이 있으면 밑의 공란에 메모를 해두고

더러는 신문을 읽고 그날의 시사도 메모를 해두기도 하며,

좋은 글귀를 보고 난 뒤나 더러는 시를 써두기도 했던 터라

내겐 반쯤은 일기장과 같은 소중한 기억들......

 

다 보고 난 뒤에도 너무 소중하기에 한권씩 모아두었고

가끔 울쩍하면 그냥 뒤적이면서 한번씩 보기도 하곤 했던 책으로

내겐 친구같은 정말 손때묻은 책들

 

무려 18년치의 좋은 생각이 한권도 남아있질 않고 사라졌다.

아뿔싸~~~~!!

또 사라져버렸구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차오른다.

어찌 이럴수가~~~

단 한번의 상의도 없이......

 

너무 화가나 아내에게 따지려 드니

미안해 하는 기색은 전혀없이 되려 화를 낸다.

 

지저분하게 책만 잔뜩 쌓여있다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건지......

내 추억은 또 어딜가서 찾아야하는지????

 

울고싶다.

그 날 이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