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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소리 2004. 12. 15. 10:41
            나        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천재와 바보와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우연히 접한 프랑스의 천재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물론 그의 작품 [개미]를 통해 그의 특이한 발상이나 상상력은 예상을 했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 꿈과 환상의 세계.
 
 개미에서 잠깐씩 어필했던 부분들을 조금은 살을 붙이고, 흥미를 위해 새롭게 재구성한 듯한 느낌도 있지만 나름대로 어린 시절의 공상을 소설이나 산문의 형식이나 틀에서 벗어나 그저 재미로 긁적여 본 낙서 형식으로 써내려 간 18편의 글을 통해 기발한 발상과 상상력, 천재성에 감탄했다.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개발된 기계에 의해 인간이 움직여야 하고,
기계적인 인간으로 변해가면서 결국은 기계에 조종당하는 인간이 되고, 사랑의 감정이 있다면 이상한 인공심장으로 기계인간으로 살아가는 인간미를 상실한 현재와 미래의 인간상을 그린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유전학 연구소에서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연구로 투명피부가 되었으나 되돌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렇게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과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현대인을 꼬집으며, 인간의 외적변화보다는 정체와 거짓이 훨씬 나쁘다고 결론을 내리는 "투명피부"

어느 날 직경이 70미터나 되는 악취가 풍기는 운석이 파리에 떨어지게 되자 언제나 사람을 선동하는 언론은 <우주인의 배설물>로 규정을 하자 사람들은 그 큰 것을 배설하는 외계생물의 거대성을 상상을 하게 된다.
그 냄새를 막기 위해 여러 대책회의와 수단을 강구하게 되는데
결국 유리를 녹여 그것을 감싸므로 운석의 냄새를 제거하게 되고,
그 유리의 빛을 인해 보석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외계인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군상인 "냄새"

현대와 미래의 노인문제를 꼬집은 "황혼의 반란"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흥미롭고, 재미와 상상력을 부여해준 것은 외계인의 입장에서 인간을 하나의 애완동물로 사육하면서 현대의 인간을 야생동물로 표현하면서 관찰한 "그들을 사랑하며 배우자"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자신의 신체는 모두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형사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왼손이 뇌의 지배를 받지 않고, 객체로 움직이므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통해 조화와 협력을 그린 "조종"

숫자나 학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과 적게 아는 사람간에는 어떤 서열이 존재하고, 더 많이 아는 사람이 하나의 제도권을 형성해 담을 쌓고 있음을 비판하며,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수의 신비"

유명한 의사가 그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리해 육체를 모두 버리고
정신을 지배하는 뇌에 일정한 영양분을 제공해 뇌와 정신은 죽지않고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경우를 가상하여 쓴 "완전한 은둔자"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꼬마 조물주>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그 의미를 상실해 폐기 처분한 장난감 속에서 인간세계는 창조가 이루어지고, 그 버려진 것을 발견한 쥐들이 그것을 지배하므로 인간의 신이된다는 "취급주의"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는 그 시대와 그것을 전달하는 언론매체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모든 사물은 이름이 붙여질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철학의 관념 속에서 사물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허깨비의 세계"

물질만능 주의에 빠진 현대에 그 나머지의 가치나 조건은 부차적인 것으로 의미를 두지 않는 현대인의 결혼관을 꼬집은 "사람을 찾습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 인정을 하면서 그것에 가치를 부여해
자신의 판단만이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해 행동하는 삶 속에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암흑"

정체성이나 주관없이 기호나 취향까지 획일화되는 현대인들을 질타한 "그 주인의 그 사자"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살아있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며,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것은 나름대로 고통을 받고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 가운데 식물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해 폭력을 쓰지만 인간들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 서로 죽이는 것일까?
수가 너무 많아 조절하려하는가 아니면 삶이 따분해서 일까'라는
인간성 상실을 질타하는 식물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상을 그린 "말없는 친구"

인간이 자신의 자유선택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 조종을 받는다는 가정으로 '신의 장난감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그런 신들을 지배하는 더 우월한 또 다른 신이 있지 않을까'라는 것.

이 모든 가정 속에서 분명한 것은 히타이트와 바빌론,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 등 정복을 추구하는 호전적인 나라에는 미래가 없고 오직 과거만 존재하며, 전쟁은 문명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밝힌 "어린 신들의 학교"

위에 열거한 기발한 발상을 엮은 책을 통해 가볍게 웃어본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인간미를 상실하는 내 모습을 
이 책이라는 거울을 통해 다시한번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어떤 책에서 본 한 귀절을 떠 올린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