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이문재]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나무소리 2006. 4. 13. 11:16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 이 문 재-
 
나, 죄 조금 짓고
많이 뉘우치며 살 줄 알았다
 
밤새도록 번개 칠 때
엘리베이터가 공중에서 멈출 때
분만실 앞에서 서성거릴 때
비행기가 뒤늦게 이륙할 때
생년월일시를 댈 때
 
땅에 넘어진 자는
넘어진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 없다
 
나, 죄 많이 짓고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살았다
나, 죄에 걸려 넘어지고서도
그 죄를 온몸에 묻히려 하지 않았다
 
***********************************
 
내 모습이다.
 
위선
그 굵기가 백층 높이를 지을 집 기둥이 되고,
그 길이가 이 땅에서 칠레까지 관통할 수 있고,
그 높이가 달에 구멍을 낼수 있을만큼 크다.
 
작은 자연의 변화에도 겁을 내면서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ㅎㅎㅎ 가소로운 나.
 
스스로 구렁텅이에 들어가서 즐기면서
누가 밀어 넣은 것처럼 행동하고,
나오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며 구해달라고...
 
바로 그 죄를 묻히지 않으려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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