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의행] 사랑한다는 말
시골 어머니에게 가면 묵은 된장 냄새만 난다 십년 전에 입던 헌옷을 지금도 입고 산다 오랜만에 보면서도 “몸이나 성하냐” 그 한마디뿐이다 된장찌개뿐인 밥을 해 주면서도 “많이 먹어라”는 말 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그래도 아들딸은 어떻게 낳았을까 어머니는 텃밭에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들깻잎을 따다 가끔 자기보다 키가 큰 막내아들을 웃음 띤 눈으로 훔쳐만 본다 외양간 암소의 등은 연신 두드려주고 똥개는 수시로 쓰다듬어 주면서 막내아들은 만져보지도 않는다
떠나올 때 “조심해서 가거라” 그 말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만 본다 어머니에게 가면 흙처럼 부드럽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나도 어머니처럼 바라만 본다 어머니도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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