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 이희중
1
젊은 날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
를 꺼내 듣다가, 까맣게 잊었던 노래
그 노래를 좋아했던 시간까지 되찾고는 한다.
그러니 새 노래를 더 알아 무엇 하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내 한 시절과 단단히 묶여 있는데
지금 들으면 간주마다 되새길 서사가 있어
귀에 더 두툼하고 묵직하니
이제, 모아둔 음반, 가려 녹음해둔 테이프
를 새겨듣기에도 내 세월이 넉넉하지 않음을 안다.
2
옷장을 열어보면,
기워 입지 않고 버리는 부유한 세상으로 건너오며
한 시절 내가 골라 입었던 적지 않은 옷들,
오늘 내 생애처럼 걸려 있거나 쌓여 있다.
다 아직 입을 수 있는 옷들,
반팔, 반바지는 헌 자리 하나 없다
그러니 새 옷을 더 사 입어 무엇 하나,
문득 열 해, 스무 해 전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나는 그때 나이로 돌아간다, 그렇게 여긴다.
사진첩 속에 멎어 있던 젊은 내가 햇살 속을 활보한다.
3
새 사람을 사귀어 무엇 하나,
내가 챙기지 못해 멀어진 사람들,
아직도 할 말, 들을 말이 남은 헤어진 사람들
옛 주소록 여기저기 간신히 남아 있다.
아주 늦기 전에, 그들을 찾아
지난 세월의 안부를 물으며 위로하고 위로 받고
거듭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간혹 용서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낳지 않은 사람들의 안부를 알아볼까,
그 이름을 낮게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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