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도종환 -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둠 속에서 어깨를 떨며 서 있을 때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없이 다독여 주시던 손길을 잊고
눈물을 멈출 수 없어 부끄럽게 돌아앉아 있을 때
가까이 와 낮은 소리로 일으켜 주시던 말씀을 잊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헛된 이름을 팔며
보이게 보이지 않게 허물을 늘려가는 하루 또 하루
지킬 수 없는 말들을 하며
욕되게 사는 삶 팔아 양식을 벌고
욕되게 쓰는 글 팔아 목숨을 이어가는
차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돌아가자 돌아가자고 두 줄의 시를 쓰다
때 묻어 궁굴며 한 줄의 시를 더 잊어버리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잠자리를 펴고 누웠다가도 문득문득
소스라쳐 눈이 떠지곤 하는 하루 또 하루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반성문을 써야 할 때가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 몇 번 썼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어 한번도 써 본 일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써야 했다.
운전하면서 별 것도 아닌 일로 불쑥 화를 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유없이 남의 탓으로 돌리고,
먹고 살기 위해 그리 하지 않아도 됨에도 턱없이 나를 낮추는 비굴함.
어이 일일이 설명을 다 하겠는가....
가끔 반성문을 쓰지 못하더라도 가끔 이 시라도 떠올려야 할텐데....
'글 마당 > 시인의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종환] 라일락 꽃 (0) | 2014.06.13 |
---|---|
[유안진]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0) | 2014.06.13 |
[정현종] 모든 것이 꽃 봉오리인 것을 (0) | 2014.06.13 |
[정현종] 방문객 (0) | 2014.06.13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0) | 2014.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