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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팔라다] 홀로 맞는 죽음

나무소리 2013. 7. 15. 10:55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독일의 야블론스키 가에 살고 있는 크방엘 부부를 중심으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대로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맹목적 민족주의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고 하루하루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등 여러 부류의 인간들의 삶을 그려놓고 있다.

 

  크방엘 부부는 전쟁에서 외아들의 전사통지를 받고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짓을 하지 않은 유대인 로젠탈의 남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유대인이라는 것만으로 끌려가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알콜 중독자이며 무질서한 삶을 살아가던 발두르 페어지게 가족은 나찌에 영합해 작은 권력을 휘두르며 로젠탈 부인의 재산을 탐하며 적당히 살아간다.

 

  전쟁이 가열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덕이나 양심마저 상실되어가는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단 한사람이라도 고통과 희생을 막으려는 늙은 최고재판관 프롬은 유대인 로젠탈 부인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걸 감지하고 그녀를 숨겨주며, “살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특히 당신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라며 삶의 희망의 끈과 자존감을 일깨워 주지만 악몽에 시달린 로젠탈 부인은 결국 페어지게 가족들에게 발각되어 자살하게 된다.

 

  가구공장에서 막일을 하는 크방엘 부부는 전쟁의 무의미함과 그런 전쟁은 국민에게 아픔과 상처만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머니!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어요. 어머니! 총통은 당신의 아들들도 죽일 거예요. 총통은 이 세상 집집마다 죽음의 통곡을 불러와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라는 엽서를 써서 무작위로 배포하지만 엽서를 발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을 다 읽어보기도 전 첫 머리를 읽는 순간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엽서를 당국에 신고하므로 죽음을 각오하고 쓴 대부분의 엽서는 게쉬타포의 손에 접수되고, 그 범인을 잡기 위해 게쉬타포는 에셔리히 경감을 책임자로 임명한다.

 

  에셔리히 경감은 엽서의 범인을 잡으라는 상부의 강한 압박에 나태하고 사회 부적응자 에노 클루게가 사건과 무관한 자임을 알면서도 그 엽서를 배포했다는 자술서를 받아 공범으로 만들고, 그를 놓아준다. 이 사건과 연루된 에노 클루게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갈 곳도 없는 부랑자임에도 헤테 헤베를레라는 부유한 미망인에게 자신이 게슈타포에 쫓기는 반전운동가로 포장해 그녀의 동정으로 동거생활을 하지만 거짓말을 일삼으며 경마장을 출입하게 되면서 헤테에게 버림을 받고, 에셔리히 경감의 강압적 권유에 권총으로 자살하므로 추악한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에노 클루게의 자살로 에셔리히 경감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되고 결국 감방에 갇혀 수없는 고문을 당하고, 사건은 후임자로 초트 경정이 배정되지만 후임자 초트 경정은 지나친 자만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엽서의 작성자 오토 크방엘 부부를 잡았지만 놓아주는 실수를 하게 되자 초트 경정은 해임되고 또 다시 에셔리히 경감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가구공장에 근무하는 오토 크방엘은 갑자기 회사에 나가게 될 일이 생기므로 집에서 작성하던 엽서를 주머니에 넣고 출근했다가 회사에서 그걸 떨어뜨리게 되므로 에셔리히 경감에게 잡히고 나서야 2년 동안 총 276장의 엽서와 9통의 편지를 작성했는데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되고, 18통만이 신고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이 일에 대해 에셔리히 경감은 오토 크방엘에게 다른 사람만 불안하게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비난하자 당신은 결코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단 한 사람이 싸우든 만 명이 싸우든 상관없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면, 동조자가 있든 없든 싸우는 거지요. 나는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렇게 할 거라며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지 않는 당당함과 함께 당신은 살인자에게 고용되어 일하죠. 그리고 그 살인자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희생양을 바치고. 당신은 돈을 받고 그런 짓을 하니, 어쩌면 당신도 그 사람을 믿지 않는지도 몰라요. , 당신은 그를 믿지 않는 게 확실해요. 단지 돈 때문에.....”라고 에셔리히 경감을 자각시키는 말을 한다.

 

  오토 크방엘의 말에 충격을 받은 에셔리히 경감은 자신이 에노 클루게를 희생시켰다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상부의 명령에 성과를 올리지 못할 때 전에 해임됐을 때처럼 감방에 들어가 혹독한 고문으로 결국은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히틀러는 살인자를 크방엘의 말에 공감하며, 누가 정권을 쥐든 전쟁은 계속 될 것이고 인간사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갈등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오토 크방엘이 엽서를 통해 생각을 바꾸어 놓은 유일한 사람은 에셔리히 경감 자신 뿐 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은 유일한 오토 크방엘의 추종자는 라고 시인하면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오토 크방엘 부부가 잡히면서 우연치 않게 헤어게젤 부부(전사한 오토 크방엘의 아들의 약혼녀 : 트루델 바우만)가 잡혀 고문 끝에 트루델 헤어게젤이 자살하고, 안나 크방엘 동생의 부부가 잡히면서 본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이 혹독한 고문을 통해 하나씩 죽어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오토 크방엘은 옥중에서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육체적인 노동만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만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알게 된다.

 

  처음 같은 방을 쓰게 된 칼 침케는 서른 살가량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과거 SS대원으로 수없이 사람을 죽인 잔혹하고 비정한 인간으로 미친 짓을 하면 죽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개처럼 네발로 기어다니며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으며 괴롭혔다. 오토 크방엘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이나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줘서는 안되겠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떳떳한 죽음을 맞겠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맞서자 19일 만에 그 사람은 변화되어 오토 크방엘에게 순종하며,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주는 등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그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다른 방으로 이감되어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사상가인 라이히하르트 박사와 같이 생활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하고, 여러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죄수들과 나누면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 살아요. 우리가 어떤 인물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남들을 위해서라 할 수 있죠.”라는 말을 통해 새로운 정신세계와 전쟁에 대항하는 데는 자신의 방법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도둑질로 감옥에 들어온 사람에게 지휘자는 많은 것을 나누고 더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그는 지휘자의 무시하고, 빵과 담배를 전부 훔치고, 비누를 훔쳐 다른 사람들에게 몰래 팔고, 가족사진을 찢는 등 파렴치한 모습에 크방엘은 분노를 하며 폭력을 행사하려 하자 지휘자는 우리도 그들과 닮아가길 바라나요, 그들은 우리를 폭력으로 복종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폭력이면 다 된다고 믿지 않아요. 우리는 선의, 사랑, 정의를 믿지요!”라는 말을 하며, 한 달만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서 인간은 진정한 선의와 사랑, 정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 큰 감동을 받는다.

 

  지휘자를 통해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불행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모차르트 음악에서 쾌활하고 즐거운 기분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에서는 마음의 고뇌와 인생의 원대한 꿈을 깨닫는 감동을 느끼곤 하면서 음악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뜬다.

 

  또 다른 감방에서 결핵으로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40세 전후의 프리트리히 로렌츠 목사를 통해 예수의 사랑에 대해 듣지만 끝내 하나님의 사랑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깊은 감동과 죽음이 인간의 사랑보다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다.

 

  형식적인 재판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진 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최고재판관 출신 프롬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토 크방엘을 면회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고통스럽게 죽지 않고 간단하게 죽을 수 있는 독극물을 전해준다. 오토 크방엘은 전쟁의 상황 속에 양심적인 사고가 그를 늘 칩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며, 사형 집행 때 그 약을 통해 고통없이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먹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면서 생을 마감한다.

 

  남편 오토 크방엘이 죽은 줄도 모르고 처형장에서 함께 처형당할 때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안나 크방엘은 수감되어 있는 감옥에 박격포가 떨어져 순식간에 고통없이 죽어간다. 인간은 그렇게 각자가 홀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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