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책마을 산책

벨벳 토끼

나무소리 2023. 6. 11. 22:12

‘벨벳 토끼’는 벨벳으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이 아이의 사랑을 받아 진짜 토끼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첫 번째 친구인 장난감이 주인에 대해 느끼는 절실함, 장난감으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해 갖는 의문을 생각해 보면서 아이가 주위의 사물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옛날에 부드러운 벨벳 천으로 만든 토끼 인형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멋진 인형이었지요. 몸통은 토실토실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겼고, 털에는 갈색과 흰색 점이 있었고, 수염은 진짜 실로 만들어졌어요. 귀 안쪽에는 분홍색 비단이 대어져 있었지요.

어느 크리스마스 날, 벨벳 토끼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아이의 양말 속에 꽂혀 있을 때, 그 모습은 정말 예뻐 보였어요. 양말 속에는 호두와 오렌지와 장난감 엔진과 아몬드 초콜릿, 태엽 달린 쥐 들과 함께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그중에서 벨벳 토끼가 가장 훌륭했어요. 그래서 아이는 벨벳 토끼만 가지고 놀았어요.

그날 저녁, 친척들이 저녁을 먹으러 아이의 집으로 왔어요. 친척들이 사 온 선물 꾸러미 푸는 소리로 집 안이 시끌벅적해지자 벨벳 토끼는 아이의 머릿속에서 잊혔어요. 그 후 벨벳 토끼는 오랫동안 장난감 선반이나 방바닥에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벨벳 토끼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 대신 기계로 만든 값비싼 장난감들은 벨벳 토끼를 무시하고 놀렸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뽐내고 으스댔어요. 모형 보트는 언제나 어려운 말을 하고, 조립 목각 인형인 사자 티모시도 벨벳 토끼에게는 모두 낯설었어요. 이런 장난감들 사이에서 불쌍한 작은 벨벳 토끼는 자신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벨벳 토끼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것은 스킨호스뿐이었답니다. 스킨호스는 아이 방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이었지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양새는 아주 낡았지만 지혜로왔어요. 스킨호스는 많은 기계 장난감들이 뽐내고 으스대다가 결국 얼마 안가 태엽이 망가져서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아서 그들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지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아이 방은 아주 신기한 것들이 많았고 놀라워서 스킨호스처럼 나이 들고 지혜롭고 경험 많은 장난감만이 그 모든 것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었지요.

스킨호스는 벨벳 토끼에서 진짜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진짜는 네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상관이 없다. 너도 진짜가 될 수 있어. 누군가 널 아주 오랫동안 사랑하게 되면, 그냥 데리고 노는 게 아니라 ‘정말로’ 널 사랑하게 되면, 그때 넌 진짜가 되는 거야.” 스킨호스는 말했어요. “누군가가 널 아주 많이 쓰다듬어 줘서 털이 빠지고, 눈이 빠져나가고, 네 몸의 바늘땀이 헐거워져서 볼품없어져야 진짜가 될 수 있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일단 네가 누군가에게 진짜가 되면 넌 그 사람에게는 결코 밉게 보이지 않으니까.” 스킨호스는 아이의 삼촌이 진짜로 만들어 줬다고 했어요. 한번 진짜가 되면 다시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고도 했지요. 벨벳 토끼는 진짜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빠지고 수염이 뜯기고 보기 흉해진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벨벳 토끼는 미워지지 않으면서 진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나나는 어떤 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난감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때는 ‘정돈하기’를 하면서 거칠게 장난감들을 선반 위로 몰아 넣었어요. 모든 장난감들은 그것을 싫어했어요. 하지만 벨벳 토끼는 나나가 자신을 어디로 던져도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아이는 자신이 항상 끼고 자는 도자기로 된 개 인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나는 개 인형을 찾으러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귀찮아 하면서 대충 자기 주위만 둘러보다가 장난감 선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뒤졌어요. “아, 그 옛날 토끼! 침대에서 데리고 자는 건 그 정도면 될 거야!” 나나는 벨벳 토끼의 한쪽 귀를 잡고 꺼내 아이의 팔에 안겨 주었어요.

그날 밤, 그리고 그날 이후 많은 밤을 벨벳 토끼는 아이의 침대에서 잤어요. 처음에는 아이와 함게 자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아이가 숨이 막힐 정도로 꼭 껴안고, 어떤 때는 벨벳 토끼를 안고 뒹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베개 밑에 깊숙이 밀어 넣어서 숨을 거의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벨벳 토끼는 아이 방에서 달빛이 비쳤던 시간과 집 안이 조용해지고 난 뒤 스킨호스와 이야기하던 때가 그리웠어요. 그러나 금방 아이와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늘 자신에게 말을 걸었고, 자신을 위해 진짜 토끼들이 사는 굴과 비슷한 터널을 이불 밑에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나나가 벽난로 앞에 등을 켜 놓은 채 저녁을 먹으러 가면, 아이와 벨벳 토끼는 휘파람을 불며 함께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이가 깊이 잠들면 벨벳 토끼는 아이의 작고 따뜻한 턱 근처에서 기분 좋게 뒹굴었고, 밤새도록 자신을 꼭 쥐고 놓지 않는 아이의 품에서 꿈을 꾸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벨벳 토끼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서 자신의 아름다운 벨벳 털이 얼마나 초라해지고, 꼬리 부분의 실밥이 점점 풀어지고, 아이가 입맞춤에 주었던 분홍색 코가 어떻게 색이 바래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요.

봄이 오자, 아이와 벨벳 토끼는 하루 종일 정원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아이가 가는 곳에는 벨벳 토끼도 함께 갔어요. 한번은 아이가 정원에서 벨벳 토끼와 놀고 있을 때 외출을 해야 한다며 누군가 아이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벨벳 토끼는 땅거미가 지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풀밭에 혼자 남겨졌어요. 아이가 벨벳 토끼 없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나나가 토끼를 찾으려 나와야 했지요. “이까짓 장난감 하나 때문에 그 난리를 치다니!” 벨벳 토끼에 묻은 흙을 털며 나나가 투털거렸어요.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뻗으며 말했어요. “내 토끼 이리 줘! 그렇게 말하지 마. 내 토끼는 장난감이 아니야. 내 토끼는 ‘진짜’란 말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벨벳 토끼는 행복했어요.

스킨호스가 말한 것처럼 벨벳 토끼는 이제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었어요. 벨벳 토끼는 진짜였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지요. 그날 밤 벨벳 토끼는 너무나 행복해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톱밥으로 만들어진 작은 가슴이 너무나 많은 사랑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윤기를 잃은 벨벳 토끼의 눈에 지혜와 아름다움이 생겼어요. 심지어 나나도 그것을 눈치채고 다음 날 벨벳 토끼를 안으며 말했어요. “낡은 토끼 인형이 오늘은 좀 달라 보이네!”

여름이 되었어요. 아이와 벨벳 토끼는 살던 집 근처에 숲이 있있어요. 6월의 긴 저녁 시간 동안 아이를 차를 마시고 나면 거기 가서 놀기를 좋아했어요. 아이는 벨벳 토끼도 함께 데리고 갔어요. 꽃을 꺾으러 돌아다니거나 나무들 사이에서 산적놀이를 하기 전에 아이는 항상 고사리 덤불 속 어디엔가 벨벳 토끼가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줬다. 아이는 마음이 착했기 때문에 토끼도 편했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어느 날 저녁, 벨벳 토끼가 혼자 그 보금자리에서 돌아다니는 개미들을 보고 있는데, 키 큰 고사리 덤불에서 이상하게 생긴 두 물체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들은 벨벳 토끼와 같은 토끼들이었는데, 털이 굉장히 많았고 아주 새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움직일 때마다 모양이 이상하게 변했지요. 그들은 분명히 새로운 종류의 토끼였어요. 진짜 토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벨벳 토끼를 바라보고, 벨벳 토끼도 진짜 토끼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일어나서 우리랑 같이 놀지 않을래?” 진짜 토끼가 물었어요. “싫어.” 벨벳 토끼가 대답을 했어요. 진짜 토끼들은 여러 동작을 하면서 벨벳 토끼도 그런 것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벨벳 토끼는 진짜 토끼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할 수 없었어요.

그때 발소리가 났고, 아이가 그들 옆을 지나갔어요. 그러자 진짜 토끼들은 한걸음에 번개처럼 사라졌어요. “돌아와서 나랑 같이 놀자!” 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어요. 다만 작은 재미들만 왔다 갔다 했어요. 벨벳 토끼는 혼자가 되었어요. 한참 후가 지나자 아이가 돌아와 벨벳 토끼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많은 날들이 흘렀어요. 벨벳 토끼는 아주 낡고 초라해졌어요. 하지만 아이는 예전과 똑같이 벨벳 토끼를 사랑했어요. 아이가 벨벳 토끼를 무척 아껴 주었기 때문에 수염은 모두 다 빠져 버렸고, 귀에 덧댄 분홍색 천도 회색이 되었어요. 점점 낡아져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토끼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아이한테는 벨벳 토끼가 늘 예뻐 보였고, 토끼도 더 바랄 것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병이 났어요. 아이의 몸이 어찌나 뜨겁던지 아이가 벨벳 토끼를 끌어 안았을 때 벨벳 토끼의 몸도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아이 방을 다녀갔고, 밤새 불이 켜 있었지만 벨벳 토끼는 이불 밑에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하면 어디론가로 치워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병은 낫지 않고 있었어요. 어느 날 벨벳 토끼는 잠이 든 아이에게 다가가 자신의 재미있고 신나는 계획을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는 열이 내리고 많이 좋아졌어요. 아이는 침대에 앉아서 그림책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벨벳 토끼는 아이 옆에 꼭 붙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맑고 화창한 아침이었어요.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어요. 어른들은 아이를 발코니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이는 내일 바닷가로 나갈 예정이었어요. 의사는 아이 방을 소독해야 하고, 아이가 침대에서 보던 책과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태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바닷가에 가기 전에 , 나나가 벨벳 토끼를 발견하고 의사에게 이 토끼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어요. “성홍열 병균 덩어리입니다!” 의사가 말했어요. 아이가 더 이상 그것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하세요!” 의사가 말했습니다.

벨벳 토끼는 낡은 그림책과 수많은 쓰레기들과 함께 한 자루 속에 담겨 정원 한 구석에 있는 닭장 뒤로 옮겨졌어요. 내일 아침에 정원사가 전부 태워 없애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날 밤 아이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어요. 그리고 앞으로 데리고 잘 토끼 인형도 받았어요. 진짜 유리로 된 눈을 가진 멋진 토끼 인형이었어요. 아이는 너무 신나서 벨벳 토끼는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내일 바닷가에 갈 것이고, 벨벳 토끼는 닭장 뒤에서 낡은 그림책들 틈에 끼어 누워 있었어요. 벨벳 토끼는 아주 외로웠답니다. 아이와 함께 놀았던 행복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누워있었어요. 그런데 눈물 한 방울이, 진짜 눈물이 작고 초라한 벨벳 코를 따라 흘러 땅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꽃 한 송이가 자랐어요. 아주 신기한 꽃이었지요.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벨벳 토끼는 우는 것도 잊고 그냥 그것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그 안에서 요정이 걸어 나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정이었습니다. 요정의 옷은 진주와 이슬방울로 만들어졌고, 목에는 꽃목걸이를 두르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었지요.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같았습니다. 요정은 벨벳 토끼에게 다가와 품에 안으며 우느라고 흠뻑 젖은 벨벳 코 위해 입을 맞추었어요. 그 요정은 아이 방 마술의 요정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사랑했던 모든 장난감들을 돌본단다. 그 장난감들이 낡고 닳아서 아이들이 장난감들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그때 내가 장난감들을 데리고 가서 진짜로 바꿔 준단다. 아이가 너를 사랑했으니까 아이에게는 진짜였지.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진짜가 될 거야.”

벨벳 토끼는 진짜 토끼가 되어 다른 토끼들과 함께 뛰어 놀았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되었어요. 날씨가 따뜻해지고 볕이 들자, 아이는 집 뒤쪽 숲으로 놀러 나왔어요. 아이가 노는 동안 토끼 두 마리가 고사리 덤불에서 나와 아이를 쳐다보았어요. 아이가 그 토끼를 보자 ‘저 토끼는 내가 전에 성홍열을 앓았을 때 잃어버렸던 낡은 토끼 인형이랑 비슷하잖아!” 하지만 아이는 그 토끼가 자신의 벨벳 토끼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옛날의 토끼 인형이 자신을 진짜 토끼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아이를 보려고 돌아왔다는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