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햇살과 바람, 생기 넘치는 신록에 묻혀있으면서
폐쇄된 콘크리트 건물의 도심 속에서 나올 수 없는 여건이라면
사람은 이미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어 있는 관속의 존재가 아닌가?
자연 속에서 태어나 70여년을 흙을 만지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삶을 떠나 도심의 보도 블럭 틈에 겨우 뿌리를 내려
힘겹게 삶을 버텨내는 민들레처럼 살아오신 내 어머니.
그나마 10여년전 중풍으로 한 풀이 꺾인 후 늘 집안에만 계신다.
늘 아침 일찍 밥한 술 먹고 출근해 저녁이면 모임이다 취미생활 등으로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 토요일은 산으로 일요일은 교회로 돌고,
손자들은 학교로 향해 또 늦은 시간 돌아오고,
며느리는 나름대로 뭐가 바쁜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
결국 집에 계신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긴 하지만
집안의 가장 어른이라는 말은 하나의 멍에가 되어
오히려 행동에 자유로움마저 박탈 당하는 소외된 삶을 살고 계신 어머니.
이래서는 안된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건데......
얼마 전부터 대상포진이라는 야릇한 증상이 발병을 하면서
그렇게 외로움 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함께
단 하루라는 시간만이라도 좀 여유있게 함께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몇 일 전부터 청남대를 모시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평소보다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덤덤한 표정 속에서도
말은 하지 않으시지만 마냥 좋아하시면서 “에미도 같이 가지?”라는
들뜬 목소리에 무덤덤하게 대답한마디 없는 아내......
아름다운 웨딩홀을 지나 장성동의 들녘을 지날 때
“어, 뜰도 넓네.”
“저쪽 오창 쪽을 가면 여기보다 훨씬 넓어유.”
“발써 모를 다 심었네.”
“지난 주 비가 많이 와서 수월하니께 얼추 심은거 같어유.”
“그려, 모심을 때는 비가 많이 와야 수나로워.”
그저 서로 사투리 섞인 말이라야 더없이 정겹다.
듬성듬성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잊혀져가는 말들이 많이 들린다.
지금은 쓰는 사람이 없지만 [수나로워]라는 말을 어릴 때는 참 많이 들었는데
그냥 그러려니 이해를 했건만 오늘 따라 새로운 말로 들린다.
아마도 순화(順化)라는 말로 지금은 조화라는 말이나
편하다는 말로 사용되는 사라져가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청남대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장애인의 경우 무료이지만
장애인 등록카드를 가져오지 않아 6,000원으로 내니
장애인이니 직접 차를 가지고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데
매표소에 표를 끊는 여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배려를 해준 것 같기도 하다.
청남대로 향하는 어머님와 둘이서 하는 호젓한 드라이브.
이렇게 자연 속에 어머님과 함께 나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내 어머니라는 천륜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하늘에 늘 감사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은
내겐 더없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청남대에 들어서니 날씨가 꾸물꾸물 심란해 우산을 챙기고,
반송으로 잘 정돈된 길을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는데
“어, 소나무도 이쁘고, 어짜먼 이르케 잘해놨냐.
니가 힘들어서 어뜨카냐~!!“(휠체어를 미는게)
이 한마디가 내 가슴을 쿵 울린다.
“아니 힘들긴 뭐가 힘들어. 하나두 안힘들구먼. 어머니가 가볍잖어.”
청남대 안의 대통령 집무실을 둘러보기 시작하는데
[노무현대통령 서거]라는 메시지가 날아든다.
‘아니 이럴 수가~~!!’ 놀라운 소식을 접하면서도
이유가 뭔지는 집에가 뉴스를 보면 알겠고,
지금 이 시간은 어머니와 단 둘이서 행복을 즐기고 싶다.
이곳저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기면서
오각정을 향하는 숲속은 나와 어머니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저절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 나무도 참 잘 심었다.”
“이 나무는 그냥 여기 있던 걸 그냥 잘 꾸며 놓은 거지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썰렁한 느낌을 주어
잠바를 벗어 어머니 목까지 해서 앞을 씌워주니
“난 안춰~ 니가 춥것다. 옷 입어~~!!”
“전 안춰유. 아직 젊은데 뭐가 춰~~!!”
오각정에서 바라보는 대청댐의 편안한 풍경 속에
좀 더 오래 취하고 싶지만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어머니가 한기를 느끼시는 것 같기에 자리를 뜬다.
오각정에서 나오는 동안 만삭되어 이젠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빗방울이 하늘을 비집고 후두둑 세상으로 뛰쳐나오는데
이제까지 참아준 것만도 더없이 감사하면서
어머님이 감기 걸릴까 염려돼 초가정은 다음에 둘러볼 것을 기약하며
청남대를 나선다.
효자촌 묵밥 집에 들어 묵밥 한 그릇 점심으로 비우고,
묵밥 하나를 포장해 고향으로 향해 길을 간다.
피반령을 오르는 길에
“옛날에 옹기장수가 옹기를 한 짐 지고 피반령을 넘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해서 피반령이랴~!
내가 시집오던 해에 여기 신작로가 났었는데
그 전에는 저 밑에 골짜구부터 올라다녔었는데......“라며 옛날을 회상하신다.
지금부터 35년 전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쯤만 해도
이 길을 자주 걸어 다녔는데 그때 골짜기로 갔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었고,
그 저수지에는 물뱀이 굉장히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을 회관 앞에 차를 세우니 올해 91세이신 밤실 할아버지가
회관 앞에 앉아 계시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할아버지, 묵밥 하나 사왔는데 좀 드셔보세요.”
“아니 올쩍마동 묵을 사와서 먹긴 잘 먹는데......”
“어머니도 오셨어요.”
그 동안 심어놓은 나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으며, 머위나물, 거렁대(삼나물) 등을 거둔 후
두어 시간 만에 고향마을을 떠나는데
어머니와 동갑나기이며, 같은 해에 이곳에 시집와서 지금은 혼자살고 있는
규학이 어머니가 뒤에 대고 불쑥 한마디 던진다.
“얼렁 죽어~! 왜들 그렇게 오래 사는지 원”
그 말 한마디가 내 가슴 속에 절대 빠질 수 없게 깊이 박힌다.
“아~~!! 어머니~~~~!!”
오늘 하루라도 이렇게 어머니와 보낸 시간 더없이 행복하다.
200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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