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김은자]접시꽃만 한

나무소리 2009. 9. 17. 09:56

        접시꽃만 한

                         - 김은자 -

 

딸 낳고 친정 온 어린 딸 같은,

밭둑에 서 이름 부르면

누구든 돌아볼 것 같은,

 

감자 캐어낸 빈 밭은

고기 잃고 물살만 남은 흰 여울

종소리 보내고 늙어가는 종탑

 

홀로 잠드는 빈 밭에 접시꽃만 한

접시불이라도 하나 내어 걸고 싶네.

 

*****************************************

 

참 쓸쓸하다.

감자 캐어난 빈밭은 파헤쳐진 상태에서

무성한 이파리에 무당벌레만 헤메이고,

종소리를 보내고 난 교회 종탑은 

어느날 갑자기 늙어버린 내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가을이면 늘 빈들에 서있는 느낌이다.

아니 가을 걷이가 끝난 빈들판 한 구석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존재는 아닌지.

 

지난 여름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퍼붓던 날은 무섭고 외로웠지만

아침이면 떠오를 태양이 있다는 걸 굳게 믿고 서있을 수 있었어.

 

가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새떼를 보면서 재밌어도 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가을날 참새들과 친해져

놀다 지친 어린 새들에겐 날개를 쉬도록 더러 어깨도 내주는

그 하나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찾던 허수아비.

 

하지만 가을 걷이를 끝으로 용도 폐기되어

들판 한 구석에 고개를 쳐박고 버려진 모습의 허수아비가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닌지...

 

가을이면 늘 그렇게 쓸쓸했어

허나 이 가을만은 내게 다른 설레임과 행복의 출발점임을 믿는다.

당신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