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만 한
- 김은자 -
딸 낳고 친정 온 어린 딸 같은,
밭둑에 서 이름 부르면
누구든 돌아볼 것 같은,
감자 캐어낸 빈 밭은
고기 잃고 물살만 남은 흰 여울
종소리 보내고 늙어가는 종탑
홀로 잠드는 빈 밭에 접시꽃만 한
접시불이라도 하나 내어 걸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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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쓸쓸하다.
감자 캐어난 빈밭은 파헤쳐진 상태에서
무성한 이파리에 무당벌레만 헤메이고,
종소리를 보내고 난 교회 종탑은
어느날 갑자기 늙어버린 내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난
가을이면 늘 빈들에 서있는 느낌이다.
아니 가을 걷이가 끝난 빈들판 한 구석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존재는 아닌지.
지난 여름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퍼붓던 날은 무섭고 외로웠지만
아침이면 떠오를 태양이 있다는 걸 굳게 믿고 서있을 수 있었어.
가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새떼를 보면서 재밌어도 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가을날 참새들과 친해져
놀다 지친 어린 새들에겐 날개를 쉬도록 더러 어깨도 내주는
그 하나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찾던 허수아비.
하지만 가을 걷이를 끝으로 용도 폐기되어
들판 한 구석에 고개를 쳐박고 버려진 모습의 허수아비가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닌지...
가을이면 늘 그렇게 쓸쓸했어
허나 이 가을만은 내게 다른 설레임과 행복의 출발점임을 믿는다.
당신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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