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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슬픈 시간의 기억

나무소리 2009. 2. 11. 15:39

제   목 : 슬픈 시간의 기억

저   자 : 김원일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읽은날 : 2009. 2. 4 - 9일

 

 

줄거리
 예순이 넘은 나라 공신이 은퇴하면 임금이 그를 기로소에 들게 하여 책을 읽으며

남은 생을 한가롭게 보내게 했다는데서 유래한 '한맥기로원'이라는 사설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는 네명의 노인들 이야기를 연작 형식으로 엮어나간 장편소설집.

「나는 누구인가」

  주인공 한여사는 일제 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다 해방이 되었고, 

6.25전쟁 중에는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 생활을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혼혈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있지만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로, 

'품위란 남이 알아주기 전에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으 기억하며,

늘 화장과 겉치레에 많은 투자를 하며 과거 남자들에 대한 육체적인 탐닉의 추억을 안고

그 자신의 과거를 감추려는 노력은 추잡한 노년의 집착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 추한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육체의 모습은 오히려 더 추해지고

한여사는 손가락을 자신의 질 속에 찔러넣고 실신해 있는 모습으로 죽게된다.

그녀의 삶과 정신이 온통 그것에 집중했 듯.....

「나는 나를 안다」

  술도갓집 딸로 30대 초반에 과부가 된 초정댁.

젊은 시절 폐병 앓던 남편을 두고 색욕을 밝히다가

우씨라는 정체 불명의 사내를 유혹해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며,

방앗간 머슴 이씨라는 홀아비와 음욕의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를 죽이고서도

손톱만큼의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

 

 작가는 평소의 그 답지 않은 농이 짙은 문체로 이를 서술해나간다.

"통정으로 아랫도리 문을 열자 시도 때도 없이 가랑이 사이가 열불로 달아올랐다.

서른을 갓 넘겨 한창 물이 오른 나이인데 폐병걸린 서방의 잠자리 농사가 영 시원치 않자

가지밭과 오이밭만 보아도 금방 아래가 축축해져 절로 거기에 손이 갔던....."

 

  그런 초정댁은 팔십이 다 된 할머니이면서도 포르노 비디오에 관심을 가지고,

기로원 사무장인 김씨와 농익은 농담으로 색을 탐하기도 한다.

 

  그의 행실이나 마음 씀씀이를 보면 도덕적 관념이 전혀없고,

몹시 마음이 모질기도 하고, 생각하면서 살기보다는 사는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한 예로 자신과 통정하던 이씨를 술을 먹여 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

폐병에 걸린 남편을 방구석에 쳐 박아 운신도 못하게 해골같은 모습으로 살게 하고

선량하고 과묵한 우훈장을 꼬드겨 통정을 하다 자식을 낳은 것이 박사학위를 받은 셋째 아들이며,

그 죄를 감추려 우훈장을 경찰서에 좌익으로 고발해 죽게 만들고,

시아버지도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아 죽게 만든다.

 

  한맥기로원에서  죽기 전

남편 아닌 실제 우씨의 아들인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과 끝까지 생활비 입금을 조건으로

집요한 거래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죽는다.

 

  "세상사람이  다 몰라도 나만은 그 비밀을 알아.

   내가 누군지 내가 잘 아닌깐.   한마디로, 나는 나를 안다."고 말하면서.....



「나는 두려워요」

 주인공 윤선생은 빈곤한 집의 언청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곰보였던 이모가 교회에 가면 언청이 치료가 된다는 말에 신앙심을 갖게 된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하나님 살아 계심의 체험적 신앙인이 되었다.

결혼대신 신앙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직으로만 살아온 그녀는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윤여은 선생을 기리는 모임(윤기모)'까지 생긴다.

 

  윤선생은 학창시절 자신을 연모하던 남학생의 손을 열차에서 뿌리치면서

그 남자가 열차에서 떨어져 죽는 일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늘 괴로워하기도 하고,

 

  교직에 있으며 외밭 서리를 하다 주인에게 붙잡힌 표한돌 학생을 꾸중하고,

자신이 직접 벌을 섰다가 이틀뒤 물에 빠져 죽은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 하는데

작가는 윤선생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을 한다.

 

 "유대 땅을 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럽에 처음 전파한 바울이 전도 여행 목적지로

정한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로마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잡혀 순교하게 되었으니,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다른가를 그네가 깨닫기도 그때였다."라고...

 

  그런 정결하고 헌신적인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교사로서의 품위를 보이려 위선이란 옷을 입고,

모범으로 꾸미며, 내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멸시를 당했거나 수난과 박해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정의와 자유와 사랑을 위해

비바람 맞으며 앞장서서 나서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같은 죄인이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들 수 있을까요?"라며

 

"저는 주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요"라고 고백을 한 후

주름살이 곱게 펴져 긴 고통에서 놓여나는 평화가 깃들이며 죽어간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형준이 원장으로 있는 [한맥기로원] 이라는 이름을 붙인 원장 삼촌 사무장 김중호.

부모님은 법관이 되기를 원했지만 일본으로 유학해 철학을 전공하게 되고,

일제시대 만주와 중국에서 고생을 하면서 술집 창기를 구출해내지만 족쇄가 되기도 하고

6.25 전쟁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좌익으로 몰려 고생을 당하기도 한다.

 

"인생으 운명이 바뀌기는 늘 한순간이 결정한단 말이야.

한길을 나섰다 달려오는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따져봐.

몇 초 빨리 길을 건넜거나 몇 초 늦게 나섰다면 피할 수 있는 액운이었고,

차 기사도 몇 초 빨리 지나갔다면 사고를 안 냈을 것 아냐.

쌍방 순간적인 액운이 맞아떨어진 게지.

이를 두고 사르트르는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라 했어

태어남이나 세상과의 관계도 나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믿어."라는 김중호..

 

 본래의 처와 딸이 자신을 찾아 월북을 하게 되고,

후처로 안씨와 함께 살아가지만 자식을 두지 못하게 되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안씨보다 그 마음 속에는 첫 아내와 딸이 늘 자리잡고 있다.

 

 도서관 사서로 살아온 그에게는 잡기장 정리는 하나의 삶으로

죽음에 이르러 66권의 성경의 권수와 같은 잡기장의 기록물을 남긴다.

 

  많은 독서를 통해 사르트르와 장자의 사상을 가슴 깊이 새겨두어

"삼라만상을 봐. 풀한포기에서 부터 나무까지, 사자든 사슴이든,

메뚜기든 벌레든, 물고기와 수초, 흐르는 물과 대기를 채운 공기, 구름과 번개,

그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만 할 뿐 있듯 없듯,

자연은 그렇게 공존해. 위대함과 비루함이 없고 잘남과 못남이 없어.

순리란 무명 속에 물이 흐르듯, 권위와 명예를 다투지 않아....."

 

  김노인은 눈이 침침해지자 독서를 하지 못하게 되는 두려움 속에서

조카 김형준과 함께 안과를 찾아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많은 부상을 입고

수술을 하였지만 병실에서 과거의 환상 속에 빨려들어간다.

 

 그러면서

"풀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소가 풀을 먹듯 늙은이들은 추억을 먹고 살아.

그러나 요리된 음식을 원재료로 돌려놓을 수 없듯,  흘러간 추억을 돌려놓을 순 없어.

네가 오기 전 나는 창밖의 나무 끝을 보고 있었어.

나무는 천천히 성장하고 아주 천천히 죽어. 느린 삶을 오래 사는거지.

인간이나 짐승은 그럴 수 없지만 아주 늙은 나무가 때때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면

잎과 열매를 많이 매달아 제 무게에 겨워 가지가 스스로 꺾어지게 하지.

그렇게 늙은 가지를 쳐내고 그 자리에 새 가지를 만들어 내기도 해.

뿌리와 몸통은 죽지 않고 말야. 그게 신비하지 않니?"

 

 "슬픔은 기억이 존재하는 한 잠재울 수 없으니,

죽자고 참는 수밖에.

참고 참는 방법 외 눈물 닦고 봐도 어디에도 위안은 없더라.

결국은 몸이, 내 눈이 이렇게 가듯,

스스로 슬픔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넌 모를거야."

 

"늙은이들은 외로워도 참고, 아파도 참고, 그리워도 참고 살지.

모진 성깔만 남아 화를 내고 누구에겐가 욕질하며,

욕질하다 슬퍼져 그리워하며, 그렇게 참는 게야.

참을 수밖에 없잖아.

늙은이들은 그렇게 슬픔에 갇혀 겨우 숨을 쉬지.

그러나 그 슬픔에서 해방되어 새로 시작할 무엇도,

심지어 슬픔을 깨달을 자각력도 마비되어 있어.

이젠 죽을 때가 됐다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내심으론,

사오년쯤, 아니, 십 년쯤은 죽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말야.

죽는다는 게 두려워 그렇게 참고 견디지만 죽음은 의외로 빨리 닥쳐.

몸이 죽으면 혼미한 정신도 체념 상태가 되어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

 

 이 글을 읽으며,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정말 철모르던 시절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기억했고,

훗날의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난 어떤 모습으로 흙으로 돌아갈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