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삶을 노래하며

진시황 유물전 관람후기

나무소리 2009. 1. 8. 11:17

진시황 미공개 유물전 행사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03년 7월 27일 삼성 코엑스에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관람을 가게 됐다.


1인당 1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관람료에 예상치 못한 비싼 주차료.

장사진을 이룬 사람 틈에서 어렵게 표를 구해 한시간 이상 줄을 서다보니

입장을 할 때는 이미 두다리가 흐물흐물 한데......


전시실에 들어서 영화에서 본 듯한 정교한 작은 모형 마차와 마부를 보며,

춘추전국시대의 6국을 통일한 진(秦)나라 시(始)황제의 위엄있는 순행을 상상하며,

최초 중국대륙을 통일한 황제의 진품 유물에 눈을 돌린다.


전시된 진품 유물의 대부분은 흙으로 빚은 군인상의 인형으로

형태나 모양을 통해 당시 군제, 군인들의 생활상과 직책 등을 짐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만든 이의 섬세함과 회화감이다.


전시품인 진나라 시대의 부장품은 대부분은 실제 사람크기의 등신형(等身形)이며,

진나라 멸망 후 한나라 시대에는 실제 사람크기의 1/3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한다.


전시된 유물제작의 목적이 예술성이나 실용성을 위해 제작한 것이 아니라

당시 최고 권력자의 명에 의해 사후(死後) 세계를 위한 특정한 목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군인형상을 흙으로 빚다보니 만든 사람이 다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인의 신장, 문관과 무관의 복장 및 장신구 등의 차이를 알 수 있었고,

특별히 말을 모는 마부의 조각에서 손가락의 미세한 힘줄 등의 부분에 대한 표현과

전쟁터를 방금 뛰어 돌아다녔던 느낌을 받도록 말의 콧구멍을 유난히 크게 만들어

그 생동감을 나타내는 등의 표현은 2,2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 콧구멍에서 금방이라도 콧김을 뿜을 듯한 섬세한 느낌을 나 자신이 숨이 가빠진다.


또한, 손금, 콧수염, 이마 주름 등의 지극히 작고 섬세한 부분을

생동감을 있게 표현하므로 금방이라도 악수를 청할 듯한 느낌에 친근감마저 든다.


입상과 좌상 등 각 사람의 표정을 만든 사람 나름대로 재미있게 나타냈고,

놀라운 것은 BC230 - 220년경에 살색(연분홍), 적색 등을 채색했다는 것과

진흙으로 실제 사람 크기(170-180Cm)로 빚어 그것을 무너지지 않게 세워 놓고,

굉장한 고온(최소 900도C 이상)에서 구워낸 당시의 기술력 또한 놀라울 뿐.......


진공박이나 동조판 등을 살펴보면

섬세한 조형에 의한 예술성과 그곳에 쓰여진 글자 (父, 更, 畿 등)를 보면서

긴 역사 속에서 한자의 변화는 극히 적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피'라는 무기나 '장검'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철기문화보다

수 백년 앞선 진나라의 금속술과 무기개발 및 제조술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사대주의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 듯하다.


약 80-90Cm 가량의 칼날에 크롬처리가 되어 있는 장검은 전혀 녹슬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까지 예리하게 날이 서있어 십여장 정도의 종이를 자를 수 있다고 하며,

서양에서 그런 기술을 개발한 것이 1800년대였다고 하니 단순비교로 볼 때

동,서양 무기제조술에 대한 비교는 동양이 훨씬 발달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짧은 활과 말로 유럽까지 정벌한 징기즈칸은

이러한 무기제조술의 발달에 힘입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대 이집트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문화가 석재(돌)문화로

예술과 건축, 도로 등을 건설하면서 기간 산업을 발전시켰다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은 귀금속 가공 및 제조술을 기반으로 금속문화에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관 및 자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일개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던 여불위를 통해

진나라 왕 정(政)이 13세에 왕이 되어 중국을 통일해 진시황이 되기까지를

책을 통해 접하던 전설을 옆에서 지켜본 듯한 생동감에 그저 만족스럽기만 하다....


약소국의 볼모가 된 왕자에서 이사를 통한 법가 사상으로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분서갱유라는 사건을 통해 학문과 학자를 짓밟은 전대미문의 폭군 진시황.

그러면서도

도량형을 완성하고, 문자를 통일하며, 도로를 통한 기간산업을 정비하고,

이민족인 흉노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2,500키로의 성을 쌓은 진시황.


인간으로서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던 어리석은 진시황.

그로 인해 서복이라는 신하에게 사기를 당하게 되는 미련한 진시황.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50년의 짧은 기간으로 생을 마쳤지만

인간의 역사가 이어질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진시황.


어쩌면 그는 과거 중국이 동양을 호령하고 지배해 왔던 그 힘과

현재를 지탱하는 힘, 그리고, 미래로 도약하는 힘을 축적한 것은 아닐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유물들은 그러한 진시황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공포에서 벗어나 불멸의 사후세계를 꿈꾸며 만든 유물이었을 것이다...


이 유물을 보면서 인간이란 죽음 앞에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불로초를 구하지 못해 죽은 진시황의 유물이 발굴되므로

약 2,200년만에 다시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인간의 역사가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한

그는 유물이라는 불로초를 통해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끝으로 진시황 미공개 유물전을 관람하고 나오면서 마음에 남는 글귀를 소개한다.


"무엇이 잡히던가

 권력을 보고싶은자 보았을 것이요.

 예술을 느끼고 싶은자 느꼈을 것이다.

 인생을 깨닫고 싶은자 깨달았을 것이리라...."


2003.  7.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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