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더러는 한주에 두번도 되지만 산을 간다는 것.
그건 일상의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삶의 어떤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
숭고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날.
늘 다니던 산악회가 아닌 새로운 산악회에
적당히 눈치보면서 묻어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눈인사도 받지 않는 버스기사님을 뒤로하고
거실 쇼파에 똥 싼 강아지처럼
비실비실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자리 잡는다.
다른 산악회에서 익혀둔 얼굴들이 눈에 띄고,
편안한 말솜씨로 반겨주는 산악회장님 부부와
살갑게 웃어주는 총무님 부부의 환대가
봄볕보다 살갑다.
지난 밤 내렸던 눈으로
하얗게 치장한 덕유산 부근의 산들은
남해로 향하는 길을 자꾸만 유혹하는데......
그때의 솔직한 심정은 남해 보리암에 가기보다
눈 덮인 덕유산 자락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지만
산행지를 바꿀 수도 없고....
‘눈치 보며 사부인 고쟁이 벗긴다’고
산악대장에게 [저기로 그냥 올라가죠]하고
되지도 않을 소릴 해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70대 노인 오줌발처럼 힘없이 구부러진 해안도로를
뜸물 먹고 설취한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며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참 평화롭다.
그 편안함과 설레임에 덕유산의 살갑던 눈은 기억에 없고,
바다를 보며 산을 오를 설레임이 한껏 부풀어 있다.
목적지에서 버스는 차멀리를 하는지 우리를 토해놓고
간단히 몸을 풀고 들머리에서 출발을 하는데
시원한 바다를 뒤로 하여 몇번씩 고개를 돌려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나뭇가지에 앉은 눈꽃에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삭혀본다.
지난 밤 나뭇가지에 처절하게 매달린 눈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흔들어대는 바람에
내 머리 위로 펄떡 뛰어 내리기도 하고
풀풀 흩어지기도 한다.
하챦은 솜씨로 님들의 사진을 몇 장씩 남기며
어쩌면 인간이 만든 기계 앞에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정상 어림목에 보랏빛 이름모를 키 작은 꽃이
빼꼼히 머릴 빼어 들고 쳐다본다.
‘너도 참 외롭겠구나!!’
정상 좌측으로 뻗은 능선 전망 좋은 곳에서
아침부터 준비한 시장기를 반찬으로
점심 식사를 하니 삼천갑자년을 살았다는
전한 시대 동방삭이 부럽쟎다....
식사 후 산대장이 하챦은 하모니카를 한 곡을 청하는데
허름한 솜씨지만 그냥 원하니 한번 해야겠다 생각하고
노래가 되는지 않되는지도 모르게 두어 곡을 바람에 흩어놓는다.
바람 타고 흩어지는 하모니카 소리에
도심의 각진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쌓여진 스트레스를 날리고
삶 속에서 얻은 상처를 훌훌 뿌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명태]를 한 곡조 더 하란다.
'자루벌린 년이나 퍼 넣는 놈이나......'
내친김에 돼지같은 목소리로 육자배기를 뽑아가며
그저 되나가나 소릴 질러본다.
호랑이 개 끌어가는 소리에 질릴 만도 한데
분위기 좋다고 넌지시 위로하는 산님들에게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여유를 배운다.
능선을 타고 보리암 정상을 향해 가는 길에
지난 밤 잔설을 뒤집어 쓴 나무들은
뭐가 그리 수줍은지 슬쩍 눈웃음을 친다.
운치있는 눈을 뒤집어 쓴 측백나무에서
몇장을 사진을 남기고 산을 오르니
키 큰 관음죽이 길 좌우에 시립해 일행을 맞는다.
사진 몇 장으로 하산 길의 아쉬움을 달래며
보리암에 도착해 한모금의 약수로
남해의 바다 향기로 목을 축인다.
내 발걸음을 지켜주며 하루를 나와 함께한 햇님이
서산으로 떨어짐이 아쉬운지 남산의 바위위에 걸터앉아
손짓하는데 그 풍경 또한 어찌나 진풍경인지.
떨어질 듯 엉덩이를 걸친 묘한 바위.
어미의 젖꼭지를 잡고 늘어지는 애닮은 어린 아기 같은 바위.
포경수술 잘못해 조금은 비뚤어진 거시기 같이 생긴 바위.
못생긴 뒤통수에 사모관대를 올려놓은 듯한 바위.
이 모든 풍경들을 뒤로 하고 보리암을 내려서는 발길들.
산이 정령 아름답다하나
내가 발품 팔지 않으면 어찌 볼 것이며.
그 아름다움 또한 함께 하는 좋은 벗님들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이 어찌 눈에 들어설고......
버스에 도착해
부지런한 손길이 준비한 따끈한 오뎅 한 그릇.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메말랐던 이웃간의 따스한 정을 채우는 아름다움인 것을......
이 따스함에 난 오늘도 행복한데......
2006. 3. 1.
남해 보리암이 있는 금산 산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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