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들판에서 먹이를 나누는 새들도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는데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어찌 서로를 보듬지 못하는지......
내가 나의 안락함만을 기뻐하여 만족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친구를 바라보지 못했음이 안타깝네......
친구야!!!
지금 친구에게는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적인 불안감이 더 큰 고통이겠지??
내가 짧고 둔한 글로 친구의 마음을 어찌 안고 뒹굴수 있겠나...
하지만,
내가 본 나의 하나님은 나에게 견딜 수 있는 아픔만을 주더군....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이니까 1970년도 10월이었지 싶다..
너도 알다시피 당시 우리나라 보건환경은 형편없었지.
아버지는 보은군 회북면 쌍암리 라는 촌동네에서 농사를 지으셨지.
어느 날 심한 기침으로 고통을 받다가 보건소를 가서 진료를 하니
결핵 3기로 이젠 얼마사시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으신거지....
어렸던 난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당황을 하고, 많이 울었는지 몰라...
주위 친척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하면서도 전염이 될까봐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기억이 돼.
아버지는 본래 조용하고, 책을 가까이 하셨던 분이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굉장히 외로웠겠고
그 어떤 것보다 어린 자식들을 눈앞에 두고,
또, 나이드신 부모님을 두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김정현'님이 쓴 "아버지'라는 책의 그 이야기와 뭐가 다르겠니.
그래도 한학을 하신데다 심지가 곧은 분이라 그랬던지
단 한차례도 술에 취해 흐트러지거나
육체적, 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고통을 내색한 적이 없었지...
결핵이라는 병이 법정 전염병이다 보니
보건소에서 몇가지 약은 무료로 지급해 주었는데
지금의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식후에는 매일 크고 흰 '파스'라는 알약을 한꺼번에 10개씩 드시고,
약국에서 작고 하얀 '아이나' 라는 독한 약을 두세알 정도 드셨던거로 기억해..
어떤 때 밤이면
피를 토하며, 아주 곤한 기침을 하느라 잠 못이루는 걸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워 정말 난 많이 울었지..
그때 난 내가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겨울 방학이 되어 집에서 소죽을 쑤는 일과
아버님께 겨우 물을 떠다 드리는 잔심부름 정도 밖에는
아무 것도 할 힘도 능력도 없었지.....
그때 난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어떤 기도도 들어주신다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됐지..
'하나님~!!
아버지를 10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
그도 아니면 5년만이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난 내가 살아가는 날 동안 정말 하나님을 잘 믿을께요.
하나님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살겠다고......"
12살의 나이에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저녁이 되면 또 이불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했어...
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 일생에 그때처럼 간절히 기도해본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적도 없는거 같아..
어린 내게 있어 10년이면 굉장히 긴 시간으로 알았고,
어쩌면 그 시간은 내게 오지 않을 줄 알았지...
또 하난 솔직하게 내가 기도를 하면서도
난 내 그런 기도가 이루어질 줄을 몰랐지......
솔직히 머리로는 믿었지만 마음으로 믿지를 못했어
1년여를 매일 기도를 하던 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을 잊게 됐지...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육체적인 고통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외진 사놀이다 보니 보건소가 멀리 있어 정확히 진찰을 받지 못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한 몫을 했을거야..
어쨌든 내가 군에 입대를 할 때까지 불편함을 모르시고,
병원도 다니시지 않으시고 그냥 사셨어.....
1980년도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할 때였는데
면회다녀가실 정도로 건강하셨고, 내게 편지도 하셨지..
헌데, 80년 11월 대대ATT 훈련을 받고 부대에 복귀하니 관보가 와 있더군...
내가 관보를 받은 것은 아버님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관보를 받게 되었어
결국 아버님의 운명도, 장례식도 참석치 못한 불효자가 됐지...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하나님은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
아버님을 꼭 10년을 더 살게 하셨던거야....
당시의 내 기도에서 단 한마디도 어긋나지 않게
내가 요구했던 기도를 들어 주셨던거야....
하나님은 내 편이셨던거지....
친구야~~!!!!!
그 외에도 내가 정말로 힘들고 지쳐 더 이상은 일어날 힘이 없던 것처럼 느껴졌을 때..
또한, 아무런 희망도 더 이상의 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 놓고 준비했던걸 알 수 있어...
당시에는 고통이 나중에는 더 좋은 길로 인도되었던 것을 말일세..
아마도 내편이신 하나님이 친구의 편이 돼주리라 난 믿네..
그와같이 하나님에게는 어떤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생각되지..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우리 친구들은
지금 네가 겪는 그런 어려운 시련이 닥쳤을 때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을 원망하고,
삶을 자포자기 하며, 하나님을 원망할 텐데
오직 친구만은 그 시련과 힘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에.....
또한,
하나님이 너를 통해 특별히 계획하고,
아픔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것을 알기에
이 시련을 준 것이 아닐까 싶어..
아름다운 것은 아픔을 겪고, 과 인내를 해야더욱 아름다와지는거 같다..
나무가 더욱 커지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겨울을 지켜온 껍질을 찢어야 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진주가 되려면 연한 조갯살은 모래가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랜 인내와 사랑하는 마음과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지......
친구야~~!!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없이는......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을 기대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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