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자화상*********
우리는 우리를 이렇게 부른다.
동무들과 학교 가는 길엔 아직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강가에서는 민물새우와 송사리떼가 검정고무신으로 퍼올려주기를 유혹하고
학교 급식빵을 얻어가는 고아원 패거리들이 가장 싸움을 잘하는 이유를 몰랐던 그때
어린시절을 보낸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생일때나 되어야 도시락에 계란하나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소풍가던 날 보자기 속 사과 두 알, 계란 세 개, 사탕 한 봉지 중
사탕 반봉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을 위해 꼭 남겨 와야하는 하는 걸
이미 알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일본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육이오 겪은 어른들이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가 없다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할 때마다
일찍 태어나 그 시절을 같이 보내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움과 행복사이에서
말없이 고구마와 물을 먹고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와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를
침묻힌 몽당연필로 쓰다가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들 때에도
우리는 역시 이름없는 세대였다.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외운 국민교육헌장 속 어디에 있었는지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 혼자 하는 줄 알았으며
무슨 이유던 나라 일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으며
학교 골마루에서 고무공 하나로 30명이 뛰어놀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검은 교복에 빡빡 민 머리, 6년간을 지옥문보다 무서운 교문에서
매일 규율부원에게 맞는 친구들을 보며 나의 다행스런 하루를 스스로 대견해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손바닥을 담임선생께 맡기고
걸상을 들고 벌서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으며
이름없는 호떡집 찐빵집에서 여학생과 학생교외지도선생에게 잡혀
정학을 당하거나 교무실에서 벌청소를 할 때면
연애박사란 글을 등에 달고 지나가던 선생님들에게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힐 때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무용담이 되던 그때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4.19세대의 변절이니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동거수기니 애국자이니
말들이 분분하고 뇌물사건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간첩들이 잡히던 시절에 우리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어디론가 잡혀갔다 와서 고문으로 병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술집에 모여 숨을 죽이며 들었으며,
책 한권으로 폐인이 되어버린 선배의 아픔을 소리 죽여 이야기하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빛깔좋은 유신군대에서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복날 개보다 더 맞고
탈영을 꿈꾸다가도 부모님얼굴 떠올리며 참고
80년 그 어두운 시절 데모진압에 이리저리 내몰리며 나뉘어 진압군이자 피해자였던
그때에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으며
복학한 책상위를 후배와 같이
까맣게 컨닝페이퍼로 더 나은 학점을 위해 도배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때에도 우리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일제세대, 육이오세대, 4.19세대, 5.18세대, 모래시계세대,
자기주장이 강하던 신세대 등 모두들 이름을 가졌던 시대에도
가끔씩 미국에서 건너 온 베이비붐세대 혹은 6.29넥타이부대라 잠시 불렸던 시대에도
우리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하던 불임의 세대였다.
선배세대들이 꼭말아쥔 보따리에서 구걸하듯 모아서 겨우 일을 배우고도
혹시 꾸지람 한마디에 다른 회사로 갈까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요즘 노래 부른 늙은 세대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후배세대들을 대변해야한다는 책임감으로
급료인상, 처우개선을 맡아서 주장해야 하는 세대
단지 과장, 부장, 차장, 이사 조직의 간부란 이유로 조직을 위해 조직을 떠나야 하는 세대
노조원 신분이 아니어서 젊은 노조원들이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드러누운
정문을 피해 쪽문으로 회사를 떠나는 세대
IMF에 제일 먼저 수몰되는 세대 미혹의 세대
오래 전부터 품어온 불길한 예감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우리만의 이름으로 부른다.
선배들처럼 힘있고 멋지게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어느날 자리가 불안해져서 돌아보니 늙은 부모는 모셔야하고,
아이들은 어리고,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놓은 것은 한겨울 지내기도 빠듯한,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고,
도전하기에는 늙은 사람들
회사에서 이야기하면 잘 알아듣고 암시만 주면 짐을 꾸리는 세대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며 컴맹의 제1세대"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첫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걸 미안해하는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 세대"라 부른다.
50대는 이미 건넜고 30대는 새로운 다리가 놓이길 기다리는
이 시대의 위태로운 다리 위에서 바둑돌의 사석이 되지 않기 위해 기쓰다가
늦은 밤 팔지 못해 애태우는 부부의 붕어빵을 사들고 와서 아이들 앞에 내어놓았다가
아무도 먹지 않을 때 밤늦은 책상머리에서 혼자 우물거리며 먹는 우리를,
모두들 이름을 가지고 우리를 이야기할 때 이름없던 세대였다가
이제야 당당히 그들만의 이름을 가진 기막힌 세대 40대
고속성장의 막차를 올라탔다가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세대
이제 우리는 우리를 "퇴출 세대"라 부른다.
아~~!!
나도 이들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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