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박진식]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소리 2004. 12. 14. 09:50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박진식

 

저녁, 백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한 소녀의 이야기를
TV에서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저렇게 착하고 여린 열한 살의 소녀가
가엾게도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니
내 눈가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여
얼굴 전체에 얼룩이 졌습니다

그런 안쓰러운 내 모습을 본
어머니는 황급히 채널을 돌렸지만
내 얼굴에 펑펑 흐르는 눈물을 나는 닦을 수 조차 없습니다

내 몸에 붙은 손과 팔인데도
마비 때문에 닦을 수 없어
나는 그 눈물을 자꾸만 입 안으로 삼켰습니다

마치 그 아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내 것인 양 나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나는 흐르는 눈물조차
스스로 닦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눈물도 이젠 내게 짐이 되는가 봅니다

그 아이의 얼굴을 지울 수가 없어
나는 계속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을 닦을 수 없어
베갯잇을 다 적시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더 슬펐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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