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삶인걸/클래식 이야기

이수인님의 남편 흡연에 관한 이야기

나무소리 2014. 4. 15. 09:58

          '별'

              이수인작곡, 이병기 작사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함꼐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별은 뉘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수인 선생님의 남편 흡연에 관한 글

 

아침에 눈을 뜨면 누운 자리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라이터 소리에 내 몸은 오그라 듭니다.

건강에 해 끼칠 일이...

백화점에서 세일이라고 야단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구경을 한다는 핑계로 둘러보니 내게는 과분한 분수에 넘치는 블라우스가 눈에 띕니다.

동행할 일 음악회장에 가게 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 망설이다 과감하게 샀습니다.

이튿날 입고 함께 나섰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게로 불더니 같이 걷던 불똥이 구멍을 냈습니다.

아까웠습니다.

구멍을 메워 보려니 메운 구멍이 궁상스러워 남편의 체면을 깍을 것이 염려되어 포기했습니다.

일에 몰입이 되면 차려놓은 밥상도 재떨이가 됩니다.

이불, 베게, 입고 있는 셔츠는 물론 당신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을 전자레인지까지 담뱃불 딱지는 온 군데 예술입니다.

담뱃불의 위력은 무시 못합니다.'슬쩍 스쳤는데 살갗이 익더라고요...'

일제 강점기에 대지진이 나서 화재가 났을 때 일입니다.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씌워 한국인들이 많이 희생당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을 색출할 때 담뱃불로 찾아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일본적인 한국사람도 담뱃불을 살에 대면 "앗! 뜨거"라는 한국말을 한다고 합니다.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으라 하지 못합니다.

바지 뒷주머니 속에 항상 준비된 오선지가 들어있습니다.

오선지 꺼낼 틈없이 번쩍 떠오르는 악상(사치스런 말로 영감일지도...)을 놓치지 않으려고 담뱃갑에 그린 악보를 오선지에 정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담뱃갑 아니면 사라질 그 영감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때 발가락 치료를 받으러 병원엘 갔습니다.

젊은 의사는 담배를 안 피우나 봅니다.

그러니 금방 담배냄새를 알아차리고 '선생님 담배 끊으세요' 라고 합니다.

제가 얼른 대답합니다.

'안됩니다. 안되요' 이분은 담배 못끊습니다.'

의사선생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본인은 아무 말 않는데 마누라인 제가 열내서 외치니 말입니다.

의사선생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작곡하는 일이 어디 쉽습니까?

허공에 떠도는 영혼의 소리를 가슴에 담아 오산지에 옮기는 일...

아무나 할 수 없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하는 일에서 유일하게 숨고르는 역할을 하는 담배를 못피우게 하면 작품을 못 쓸 것 같아 목숨 걸고 말리지 못합니다.

 

집안 논갖 물건들이 한 두 군데 담뱃불 자국이 있습니다.

담뱃불 자국이 우리와 함꼐 살면서 내남편이 함께 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 그것들도 사랑합니다.

자려고 누워있는 위로 담배 물고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담배불똥이 내 얼굴 위로 특히 눈에 떨어지면 큰일 날 것 같아 얼른 안경을 찾아 꼈습니다.

안경은 새로 사면 될테니 말입니다.

담배 못 피우게 자극적인 말을 하는 분들, 그말 때문에 기분 나쁘고 상처받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속되고 나쁜 말로 "니들이 혼 바쳐 작곡을 해봤어?" 입니다.

 

한 때 우리집 거실 커튼에 불구멍내기, 굴뚝에 연기 나듯 피워대던 골초님들...

하나 둘씩 담배 끊으니 벼슬이라도 한 듯 '아직도 담배 피우시냐'고 의기양양입니다.

곳곳에 금연석도 모자라 도심 가운데 어느 곳에는 담배 피우면 벌금이 과하게 나온답니다.

원초적인 뜻은 알고 있으나, 담배를 피워야 하는 사람들, 불공평하게 죄인 취급이라도 하려는 듯합니다.

인권위원회가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지 않나 봅니다.

담배 한 개비 주고 받으며 어색함을 달래고 사교를 하며 마음을 나누던 담배연기 속 낭만은 어쩌시렵니까?

담배 피운다고 뒤떨어진 또는 의지가 부족한 따위의 생각은 안됩니다.

담배를 피워 안정을 얻고 아픈 상처를 위로받고 낭만을 느끼는 특별한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대중가요 중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여"...

이 대목은 언제나 나를 목메게 합니다.

 

<이수인 지음 '내맘의 강물', 2012년 교육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