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당/시인의 마을

[서정윤] 홀로서기

나무소리 2009. 8. 3. 12:43

     
    홀로서기 
                       - 서 정 윤 -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27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