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산에 간다는 것은
산을 오른다는 것보다는 산과 만난다는 의미로 다가선다.
내가 산과 만난다는 것은
나름대로 나를 찾아가는 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산사람과 만난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비록 산을 오르지 않아도
산사람과 함께한다면 나는 산과 만나는 것이고,
내가 두발로 정상에 서있다 해도산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나는 산을 만나지 못하고 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마음 따뜻한 님이 준비해 준 떡이 나눠지고,
만남을 행복해하는 들뜬 목소리가 모처럼 만난 형님목소리보다 반갑고,
까르르 터져나는 웃음이 바람난 열일곱 계집애의 목소리보다 맑다.
안성휴게소에 도착해
산행 준비에 미진한 것을 마저 보충을 하고
화장실 변기 앞에 서니 기막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 저를 소중히 다루시면 제가 본 것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띵~~@_@~~!!!! 햐~~~!!! 기막힌 문구다’
혹시 내가 대충 일보고 화장실 문을 나서는데
“나는 봤다. [쉴만한 물가]꺼 봤다~~~” 소리친다면???
음~~ 개망신 당하기 전에 소중히 다뤄야지~~~
산내음의 시산제 축문에 내가 써 줬던 글처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가장 귀한 사람으로 여기듯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떤 것도 가장 귀하게 여기면
그 또한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지....
늘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하는데......'
옛날 [오드리될뻔]이 집에 돌아오면 옷을 홀랑 벗고 샤워를 하는데
욕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애완용 앵무새가
“나는 봤다. 나는 봤다. 나는 봤다” 이렇게 떠들었다나.
[오드리될뻔]이 하도 약이 올라서
“너 한번만 더 그 소리하면 대가리를 홀랑 깎아 놓는다.”
그렇게 겁을 잔뜩 줬더니 조용해졌다는데
하루는 [오드리될뻔]이 집에 [율 브리너]를 초대해서
현관에 막 들어서는 순간 앵무새가
“너두 봤지? 너두 봤지? 너두 봤지?” 그랬다나...
버스에서 부산하게 앞뒤를 오가면서 적당히 야한 이야기와
먹거리로 정을 나누며, 건조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산행 들머리인 관악산 공원입구다.
9시 20분
서울에 계시는 [푸른솔]님 부부와 반가운 만남.
시끄러운 소음과 부산한 발걸음 틈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휴게소 오른쪽을 돌아 맨발공원을 들머리로 산을 오른다.
북적이던 관악산공원과는 달리 한적한 산길에
지난 가을 삶을 마감한 낙엽이 푹 쌓인 완만한 경사면을 오르는데
선두의 발걸음이 빠른 탓인지 후미가 늦은 탓인지
그 차이가 벌어지면서 거리를 줄이기에 그저 분주하다.
들머리에서 20여분 지나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대학교를
사진 몇 장으로 추억을 갈무리하며
칼바위능선을 오르내리는 산행의 즐거운 맛.
10여분 더 올라 국기봉이 서있는 곳.
시원한 조망과 바람을 느낄 틈도 없이 비지땀을 흘리며
그저 정상만을 향하는 대개의 산꾼들 틈에서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남산과 파란 하늘을 감상하며,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담고 마음으로 느끼고,
카메라 앵글 속에 추억으로 담아내는 이들은 진정한 산꾼이다.
칼바위 능선에서 발바닥으로 찰진 바위를 맛보는 암릉 산행.
국기봉을 눈앞에 두고 슬링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끌어주고
뒤에서는 밀어주면서 국기봉에 서니 산행은 더 깊은 맛이 든다.
둔한 글로 어찌 표현하랴~
그냥 “참, 좋다.”
깃대봉에서 막 내려서는 암릉의 한 구간에
아직 바위에 익숙치않은 산님들이 조금 두려워하는 곳이나타나지만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보듬어주는 산내음은 무엇이 걱정이랴.
10여분 평범한 육산길이 이어지다 3-4미터 정도의 자일 앞에
설익은 산 꾼들이 망설이지만 바위에 익숙한 우리님들은
망설임 없이 매달려 조금의 주저함이나 지체가 없다.
장군봉을 머리에 이고 자연과 더불어 공급받는 점심.
탁 트인 조망으로 눈으로 맛보는 목(目)도락과
시원한 바람을 몸으로 맛보는 체(體)도락
입으로 맛보는 식(食)도락을 겸하니 왕후장상이 부럽쟎다.
장군봉에서 삼성산을 향해10여분 진행하니
살벌한 철근구조물 중계소가 서있고 그 옆을 지나면서
수북히 쌓인 쓰레기가 눈살을 찌뿌리게하지만
5분도 가지 않은 곳에서부터 멋지게 펼쳐지는 암릉구간에
마음은 다시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기암괴석을 온 몸으로 부둥껴 안고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등 굽은 소나무.
그 옆에서 단 한번도 눈길을 받지 못한 초라한 바위가
서로를 부둥껴 안고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 낸 삼성산.
카메라 셔터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반대로
굼뜬 산행의 속도가 짜증날만도 하건만
그래서 더욱 즐거워하는 산내음.
피곤함이나 버거움도 없다.
그저 여유와 너그러움과 행복만이 머무는 산행.
가기 싫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바위에 누워 상춘을 맛보고 싶다.
봄볕을 느끼면서 세상의 소리도 귀밖으로 듣고 싶다.
삼막사에서 남근석과 여근석을 보면서
산행의 맛이 아닌 관광의 느낌도 받아본다.
게으른 산행을 마치고 난 시간은 4시 45분.
들머리에선 뵌 [푸른솔]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선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거 참 신기하지
“여자는 옷을 입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남자는 그 입은 옷을 벗기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니까.
그러니까 여자들 대충입어 벗기기 너무 힘들게 맹글지 말구~~!!“
이렇게 그날 하루 행복으로 충전한 덕에
난 또 환한 웃음으로 한 주일을 보내고 있는 중.